정월 초하루는 과거에 '세수(岁首) , 원일(元日), 원삭(元朔), 정단(正旦)' 등으로 불렀으며, 음력 한 해의 새로운 시작이다. 이날은 새해 경축일 중에서 가장 성대한 하루이며, 아침 일찍 문을 열고 '새해맞이' 포문을 연 뒤 집집마다 새해맞이의 서막을 열었다. 모두들 서로 새해 인사를 하며 새해의 아름다운 축원을 표했다.
춘절의 유래
춘절(春节)은 속칭 '년(年)' 이다. '년'의 갑골문자 작법은 매우 형상화되어 있으며, 매우 간단한 두 글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곡식(禾)이고 하나는 사람(人)이다. 벼가 위에, 사람이 아래 있는 형태다. '설문해자' 에서는 "년은 곡식이 익는다" 하였는데, 이로 보아 선민들은 곡물 수확을 해(년)를 세는 기준으로 삼았다.
춘절의 경축행사는 삼황오제의 납제(腊祭)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내려오고 있으며, 이후 역대 경축행사의 새로운 실천은 역법에 따라 달라졌다.
서주 시대에는 이미 후대의 새해 맞이 주요 내용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제사, 축하인사, 축수 등이 있다. 진나라에서 서한전기까지, 세수는 10월 초하루로 정해졌고, 후대에 '진세수' 또는 '시월조'라고 불렀다.
한 무제 태초원년(기원전 104년)에 '태초력)'을 반포하면서부터 신년은 하력 정월 초하루로 정해졌고, 그 후 대대로 이어졌다.
신해혁명 이후 전통적인 왕조기년 방식을 바꿔 음력과 양력을 병행하면서 양력 1월 1일을 원단(元旦으로, 음력 정월 초하루는 춘절(春节)로 정했다.
춘절 풍습, 새해인사 새배(拜年)
정월 초하루에는 서로 세배(拜年 bài nián)를 하는데, 이를 하년(贺年), 하세(贺岁), 하정(贺正), 배절(拜节) 등으로도 부른다. 명나라 시기 '제경경물략-춘장'에는 세배와 관련된 특별한 기록이 있다: "정월 첫날 - 아침에 일어나 씻고 떡(年年糕)을 먹고, 집안 어른에 인사를 하고, 이를 세배(拜年)라 한다.",
전통적인 세배 의식는 세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절이다. 미성년자가 항렬이 높은 어른에게 세배를 할 때는 큰절을 해야 한다. 둘째는 몸을 굽혀 공손히 인사하는 것이다. 보통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세배할 때 쓰는 속칭 '길배'라 한다. 세 번째는 두 손을 모아 가슴 쪽에 올려 예를 표하는 것으로, 보통 서로 인사하는 관계다.
옛베이징 의 풍습에 따르면 초하루에 사위는 장인 장모님을 먼저 만나야 하는데, 지금은 보통 초이틀 째에 딸과 사위가 친정에 가서 세배를 한다. 옛 베이징 사람들은 세배를 매우 중시했다. 접대하는 사람들은 음식함을 준비하는데, 안에는 각종 말린 과일이 있으며, 이를 '길리과(吉利果)'라 불렀다. 새해 인사를 하러 오는 사람이 많든 적든 음식함 안에는 손님에 대한 존중과 축복을 표시하기 위해 가득 채워야 했다.
춘절 풍습, 세뱃돈 야수이첸 (压岁钱)
세뱃돈(压岁钱 yā suì qián)은 옛날에는 '염승전(厌胜钱)', '압수전(压祟钱)', '압세전(押岁钱)'이라고 불렀다. 정월 초하루에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세배를 드리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세뱃돈을 주었다.
청나라 때 '연경세시기'에 따르면 "색줄로 돈을 꿰어 용 모양으로 만들어 침대 밑에 놓는 것을 세뱃돈이라고 한다. 웃어른이 아랫사람에게 주었는데 이를 세뱃돈이라고도 한다." 중화민국 이후에는 붉은 종이로 100개 동전을 싸서 주는 것으로 바뀌기도 했는데, '장수백세'를 의미했다.
설날 세뱃돈은 손윗사람이 아랫사람에 사랑이고, 아랫사람이 손윗사람에 대한 존경을 보여주는 가족윤리적인 민속활동이다. "삼성은 남쪽에서 집집마다 세배를 한다. 아랫사람은 절을 하면 윗사람이 돈을 준다. 돈이 없으면 발길을 돌린다"고 말했다.
춘절 풍습, 묘회(逛庙会)
정월 초하루가 시작하면, 전국 각지에서 묘회(庙会 miào hu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묘회는 실제로 오락·물자 교류를 집약한 민중들의 대규모 모임이다. 비교적 전형적인 묘회 활동은 베이징 시내의 여러 곳을 뽑을 수 있다.
베이징 시내에는 사찰이 매우 많다. 요나라 때부터 베이징에 묘회가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당시에는 상사춘유(上巳春遊)라고 불렀다. 그 후 묘회는 더욱 떠들썩해졌다. 베이징에는 8대 묘회가 있었는데, 백탑사, 호국사, 융복사, 옹화궁, 동악묘, 백운관, 반도궁, 창전의 묘회를 일컬었다. 준절이 오면, 묘회가 열린다.
묘회 행사는 오늘날에 대부분 복원되었으며 비교적 유명한 곳은 지단, 용담호, 백운관 등이 있다. 춘절마다 이곳에 패방을 설치하고 등불을 켜고 노점을 설치하여 수많은 관광객이 몰렸다. 이 묘회에는 고도 특색이 가장 풍부한 민간 문화 오락 프로그램과 민속 공예가 집중되어 있어 당연히 큰 인기를 끌었다.
이전의 베이징 묘회는 순박한 베이징의 민풍과 민속을 표현하였다. 각종 민속 놀이와 공연들이 열렸으며, 현대적인 문예 공연과 아동 오락 등도 추가되었다. 묘회에는 각종 먹거리도 있었는데, 베이징의 전통 간식거리를 중심으로 풍부한 베이징 맛이 있고, 거기에 평소 보기 힘든 민간 특색 공예품 들도 모여들었다.
춘절 풍습, 교자만두 먹기
정월 초하룻 날, 중국의 많은 곳에서 아침식사로 교자만두(饺子)를 먹는데, 교자를 솥에 넣고 끓 일때 폭죽을 터뜨리고, 온 가족이 함께 앉아 따뜻한 교자를 먹는다. 화기애애하고, 의식감이 있으며, 연초 명절 분위가가 가득하다.
춘절 풍습, 새해 떡 먹기
쌀떡을 만드는 것은 중국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북위 가사협의 '제민요술'에서 증명된다. 만드는 방법은 찹쌀가루를 체에 밭쳐 걸러내고, 물과 꿀을 넣어 반죽을 만든 후 대추와 밤을 반죽에 붙이고 대나무 잎으로 싸서 찐다.
떡은 원래 섣달그믐에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조상에게 바쳐졌다가, 후에 춘절 음식이 되었다고 한다. 춘절에 떡을 먹는 풍습은 송나라 때 유행하여 명나라 때 성행하였다. '제경경물략' 기록에 따르면 당시 베이징 사람들은 '정월 첫날 기장떡을 먹었는데, 새해떡이라 했다'는 풍습이 있었다.
떡은 명절 음식일 뿐 아니라,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의미도 있다. '떡을 먹다(吃年糕)'의 발음을 차용해 '해마다 올라가다(年年高)'의 뜻으로, 상서로운 뜻에서 해마다 승승장구한다는 뜻으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