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실 건축, 공왕부

2023-06-05

공왕부(恭王府)는 청나라 시긴 가장 큰 규모의 왕부 건축군으로, 청나라 왕조의 전성에서 쇠퇴까지의 역사적 과정을 목격하였으며, 매우 풍부한 역사 및 문화 정보를 담고 있어 '공왕부 하나가 청나라 역사의 절반'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다.

건륭제 49년(1784년), 당시 화신(和珅)이 이 저택을 짓는데 최소 4년이 걸렸다. 함풍 원년(1851년) 정계의 풍운아 공친왕 혁흔이 저택의 주인이 되면서 '공왕부'라는 이름이 붙었다.

왕부는 약 6만㎡의 부지에 30여 개의 건물 군락을 갖추고 있다. 왕부 뒷편에는 화원이 존재하며, 취금원(萃锦园)이라고도 불리는데, 청 건륭 42년(1777년)에 조성되었으며, 고증에 의하면 명나라의 옛 화원터에 재건하였다고 한다. 전체 화원 부지 면적은 28,000제곱미터이다. 왕부 건축들은 동, 중, 서의 세 갈래로 나뉘며, 각 노선은 남과 북의 엄격한 중추선으로 관통하는 다진 사합원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왕부 내 '서양문' '복자비' '대극루'를 합쳐 공왕부 삼절(三绝)이라 부른다. 대극루는 동치 연간에 건립되어 공친왕과 그 친지들이 연극을 관람하던 장소이다. 이 극루는 중국에 현존하는 유일무이한 완전폐쇄식 대극루로 건축면적이 685㎡이며, 대극루 전체가 벽돌과 목조건축임에도 쇠못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극장은 박진감 넘치는 소리를 위해 무대 밑을 비운 뒤 몇 개의 큰 항아리를 설치했고, 교묘하고 특수한 구조로 공명혼향 공간을 넓혀 관객이 어느 위치에서나 배우의 노래를 또렷하게 들을 수 있도록 했다.

복자비는 길이 7.9m로 전체가 가산에 끼워져 있으며, 청 성조 강희황제의 어필로 새겨졌다. 강희제는 서예에 조예가 깊었으나 글씨를 쓰는 일이 드물어 이 '복'자는 귀한 글씨가 되었다.  이 글자는 고풍스러우면서도 힘이 있고, 기세가 넘치며, 그 구상이 절묘하여 가희 천하제일 복(福) 이라 할 수 있다.

서양문은 화원중로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화원의 정문으로 '정함태고(静含太古)'라고 불리며 혁흔이 지었다. 문은 한백옥석으로 조각되어 원명원의 대수법해원문을 본떠 만든 서양 아치형 스타일로 매우 기품있다. 문 바깥측에 정함태고라 새기고 안측에는 '수양항춘'이라고 새겼는데, 그 중 정과 수는 정원 주인이 달성하기를 원하는 두 가지 경지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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