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베이징에는 '구단팔묘(九坛八庙)'라 하여 9개의 제단과 8개의 사당이 있었다. 여기서 묘(庙)라 함은 신불, 역사적 유명인사 또는 조상의 신위를 모시는 곳을 말하며, .팔묘는 태묘, 봉선전, 전심전, 수황전, 옹화궁, 당자, 문묘, 역대 제왕묘를 가리킨다.
베이징 태묘(太庙)
태묘(太庙)는 황실의 가묘다. 베이징의 태묘는 명 영락18년(1420년)에 세워졌으며, 천안문 동쪽(현재의 노동인민문화궁이 있는 곳)에 있다. 중국 고대의 예제 사상 중 중요한 내용은 조상을 공경하고 효도를 제창하는 것이다. 좌조우사는 바로 이러한 관념들을 구현하였다. '좌조'란 궁궐 좌측 앞에 조묘를 두고, 우측에는 사직단을 둔다는 것으로, 조묘는 제왕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천자의 가묘라 하여 태묘라고 불렀다. 궁궐의 왼쪽 앞쪽에 위치해야 하므로 베이징 태묘는 천안문 동쪽에 위치하고 있습다.
태묘 건축 규모는 상당히 웅장하여, 전전, 중전, 후전을 포함한다. 전전은 황제가 제사를 지낼 때 예를 행하는 곳이고, 중전은 황제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곳으로, 청나라 말기에는 누르하치·황태극·복림 등 11대 제후의 위패를 모셨다. 후전은 제수용품을 보관하는 곳이다. 태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지극히 성대한 일이어서 국가 대사가 있을 때만 제사를 지낼 수 있다. 황제는 혼례, 개선 등 큰 잔치와 설날이면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
고궁 봉선전(奉先殿)
봉선전(奉先殿)은 고궁박물원 내정 동로구역에 위치한다. 명청 양대시기, 이곳은 궁궐내에서 황제가 선조를 제사를 지내던 가묘(家庙)였다. 봉선은 조상 숭배의 뜻을 가지며, 봉선전은 명나라 초기에 처음 건설되었으며, 명대에서 청대에 이르기까지 여러차례 보수를 했다.
봉선전은 앞뒤 이중으로 구성되며 그 중간을 연결하여 존귀한 "工" 자형태를 갖는다. 앞전은 정전이고 뒷전은 침전이다. 봉선전은 태묘만큼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대체할 수 없는 위상을 가지고 있다. 황제는 만수절, 설날 등 큰 경축일마다 봉선전 전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기타 시기에는 후전에서 제사를 올렸다.
현재 고궁 봉선전은 시계관 전시실이 들어서 있다.
고궁 전심전 (传心殿)
전심전(传心殿)은 황제가 경연(经筵, 과거 황제가 경서를 듣고 공부하는 것)을 앞두고 '제고례(祭告礼)'를 올리는 장소로, 제왕선사를 모시고 있으며, 고궁 문화전 동쪽에 위치, 청 강희 24년(1685)에 건립되었다.
이곳에는 중국 고대의 11명의 성현이 모셔져 있으며, 동쪽에 주공위를 서쪽에 공자위를 두었다. 경연(经筵)은 황제에게 경전과 역사를 연구하고 들려주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강좌 제도다. 경연이 열리기에 앞서 황제는 관원을 보내거나 직접 이곳에 와서 제사를 지냈다. 이곳 제사장소의 명칭은 전심(传心)인데, 여기서 '심(心)'이란 요·순·우가 전위할 때 전한 16자 심법을 가리킨다. "인심유위, 도심유미, 정유유일, 윤집궐중"을 가리키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도심을 유지하며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경산 수황전 (寿皇殿)
수황전(寿皇殿)은 청나라 제후와 조상신상(祖祖神像)을 모시는 곳이자, 제후가 사후에 매장되기 전에 잠시 영혼을 모시던 곳으로, 현재 경산공원(景山公园) 내 북쪽에 있다.
수황전은 명나라 시기에 건축되었으며, 명청시기에 황실에서 조상들의 제사를 지내던 장소였다.
원래 명나라시기에는 경산공원 동북모퉁이에 있었다가 청나라시기에 현재위치인 경산의 정북으로 옮겨 건축하면서, 베이징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중추선 상의 두번째 규모의 건축군이 되었다.
신중국이 설립되고 1954년에 이 공간은 베이징시 소년궁으로 사용되었다가, 2013년 이후 문화재로 다시 회수되어 정비를 거쳐 사회 대중에 개방했다.
수황전은 강희에서 광서까지 8대 제후의 화상과 위패를 모신 곳이다. 설날, 세모, 영절 및 선제의 탄생일, 기진에 황실이 제사를 지내고 예를 올렸다. 현재 모습은 청 건륭 14년 (1749)년의 모습을 기준으로 복구하였다고 한다.
옹화궁 (雍和宫)
옹화궁(雍和宫)은 청나라 중후반 전국에서 규격이 가장 높은 불교 사원이었으며, 베이징 시내 동북쪽 모퉁이 옹화궁거리 28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옹화궁은 세 단계를 거쳤다: 최초로 청나라 세종 윤진이 패륵화친왕 시기의 저택이자, 청 고종 홍력이 태어나고 성장한 곳으로, 옹정·건륭 2대 제왕의 '재잠지거'였다. 이후 청나라 황제 행궁으로 승격되었다, 마지막에는 황실 사원으로 바뀌었다. 왕부는 강희 33년(1694년)에 세워졌고, 옹정3년(1725년)에 행궁이 되었다가, 건륭 9년(1744년)에 사원으로 변경되었다.
주요 건물로는 천왕전, 은안전, 영우전, 법륜전, 대불루 등이 있다. 옹화궁은 두 명의 황제를 배출했기 때문에 이곳의 전우인 황기와홍벽은 고궁과 같은 규격이다.
옹화궁은 지금까지도 대중들이 가장 즐겨찾는 기복의 성지다. 신년을 맞이할 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사업과 학업의 성취, 평안과 건강을 기원한다.
당자 (堂子)
당자(堂子)는 만주신묘(满洲神庙)로, 1644년에 건립되었다. 청나라가 정권을 수립한 후, 중대한 정치적, 군사적 행동이 있으면, 이곳 절에서 제사와 출정집회를 거행했는데, 당시에는 이를 '알묘(谒庙)'라고 불렀다.
베이징 입성 후에 건륭제 때 '알묘'를 '알당자(谒堂子)'로 바꾸었다. 당자가 지내는 제사는 주로 원단, 배천, 출정, 개선 등이 포함된다.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는 풍습은 부의의 퇴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끝났다. 당자는 철거되었으며, 현재 귀빈루 호텔의 위치다.
문묘 (文庙)
문묘는 공묘(孔庙)라고도 부르며, 원(元)·명(明)·청(淸) 3대 공자(公子)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안정문 내 국자감거리에 위치하며, 원 대덕10년(1306)에 건설하였다.
사원 안에는 대성문과 대성전이 있는데, 대성전은 공자에 제사를 지낼 때의 정전이고, 내부에는 공자의 위패를 두었다. 동서배전에는 공자의 72제자와 역대 유가 학자들의 위패가 설치되어 있다. 대성전 앞 고목은 600여 년 동안 무성하게 자라 하늘을 가릴 정도다. 대성문 밖에는 원·명·청의 각 시기 진사명비 190여 기가 있다.
역대제왕묘 (历代帝王庙)
역대 제왕묘는 명청(明淸) 양대 황제들이 삼황오제(三皇五帝)와 역대 제왕, 문신 무장에게 제사를 지낸 장소로, 부성문내거리에 위치하며, 명 가정10년(1531년)에 건립되었다.
사원 내의 경덕숭성전은 정전으로 녹색의 겹처마지붕, 단홍색의 문과 창, 흰색의 옥석 받침이 있어 숙연하고 웅장하다 .역대 제왕묘의 정치적 위상은 태묘와 공묘와 함께 명청 베이징의 3대 황실묘로 통칭된다.
건륭황제는 이곳에서 제사를 지낼 제왕을 188위로 정했고, 이외에도 백이, 강상, 소하, 제갈량, 방현령, 범중엄, 악비, 문천상 등 역대 현신 명장 79명의 위패를 두었다.
작성 김기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