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의 ~얼 골목들

2022-09-06

베이징식 사투리 특징 중에서 얼(儿)화의 발전이 가장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단어나 글자의 끝에 얼(儿)을 붙여쓰거나, 또는 문자상에 없어서 발음상으로 얼(儿)을 붙여 말히기도 한다. 발음기호 상으로 er 또는 r이 되며, 이는 말의 뜻을 구분하는 작용과 함께 발음을 더욱 부드럽게 만든다. 즉 음색을 부드럽고 발랄하게 한다. 

베이징의 골목 명칭 중에서 이렇듯 얼(儿)화로 표현된 곳들이 있다. 

1. 쥐얼 후퉁, 국화골목

국화는 베이징의 시화 중 하나다. 난뤄구샹 (南锣鼓巷) 골목 중간에서 동쪽으로 꺾으며, 쥐얼(菊儿) 이라 불리는 골목이 있다.  이곳 쥐얼 후퉁(菊儿胡同)은 소란스러움과 격리되어 있으면서도, 시내 중심과 연결되어 있고,  수 백년의 지속과 발전을 거쳐, 베이징성에 박혀 있는 하나의 살결이 되었다. 골목의 전체 길이는 438미터다. 명나라 시기에는 쥐얼(局儿)이라 불렀고, 청나라 건륭제 때는 쥐얼 후퉁(桔儿胡同)이라 칭했다.

쥐얼 골목은 고적이 많고 역사가 길 뿐 아니라, '중국의 20세기 건축유산목록'에 오른 유일한 골목이자, 중국에서 유일하게 '유엔 살기 좋은 상'을 받은 주택 단지로 매우 특수한 곳이다. 

1978년부터 우량융 선생은 베이징 구시가지 정비 연구를 시작하였으며, 1987년 쥐얼 골목 41호원을 시범으로 선정해 13개 주택을 리모델링했다. 이곳은 두터운 역사와 함께 현대인의 생활에 잘 어울리는 인간적인 설계를 통해 전통 골목의 외모를 그대로 살리면서 쾌적한 주거환경을 살렸다. 많은 개성 있는 작은 건축들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새롭게 태어난 쥐얼 골목은 옛 골목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점점 더 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주소 :北京市东城区南锣鼓巷东侧

2. 마오얼 후퉁, 모자 골목

마오얼 골목(帽儿胡同)은 둥청구에 위치하며, 동쪽 난뤄구샹(南锣鼓巷) 골목에서 서쪽 디안먼 외대가(地安门外大街) 까지다. 북쪽은 더우쟈오 골목(豆角胡同)과 서로 연결되고, 남쪽은 동부야챠오 골목(东不压桥胡同)과 서로 통한다. 

명나라 때 즈퉁먀오 원촹궁(梓潼庙文昌宫胡同) 골목으로 불렀는데, 원촹궁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청나라 시기에는 모자 제작 공방이 있어서, 마오얼 골목으로 이름지어졌다. 

여기에는 원래 맛이 나는 약간의 옛 베이징 원락 및 과거 귀족의 저택이 그대로 남아 있다.  마오얼 골목의 7호, 8호, 9호원 주택은 원래 청나라 말기 대학사 문욱(文煜)의 저택이었다. 13호원은 풍국장(冯国璋)의 주택이었다. 35·37호원은 원래 청 선통 황후 완용(婉容)의 친정집인 승은공부(承恩公府)로 속칭 냥냥부(娘娘府)라 하였다. 45호원은 원래 청나라시기 제독아문이었다.  옛 북경성의 정취를 느끼려면 마오얼 골목이 좋은 선택지다. 

주소 :北京市东城区地安门外大街帽儿胡同

3. 위얼 후퉁, 비 골목

위얼 후퉁 (雨儿胡同) 골목은 동서 방향이며, 동쪽 난뤄구샹(南锣鼓巷)에서 시작해, 서쪽 둥부야챠오 골목(东不压桥胡同)까지, 남쪽에는 숴이 골목(蓑衣胡同)이 북쪽에는 마오얼 골목(帽儿胡同)이 있다. 

길이 343m, 폭 5m다. 명나라 시기 소회정공방(昭回靖恭坊)에 속했으며, 위룽 골목(雨笼胡同)이라 불렀다가 청나라에서는 상황기(镶黄旗) 소속, 위얼 골목(雨儿胡同)으로 불렀다 민국시기에 그대로 명칭을 사용하고 후에 몇 차례 개명하였다가 1979년에 원래 이름을 회복하였다. 원대도와 같은 시기에 건설된 것으로 베이징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구역 중 하나다. 일찍이 원대도의 도심에 속했으며, 명청 시대에는 달관귀인들이 모여들었던 곳이다.

위얼 골목에는 일찍이 유명인사들도 많이 살았던 곳으로, 유명한 화가 제백석(齐白石)도 골목 13호에서 살았으며, 현재 제백석 옛집기념관(齐白石旧居纪念馆)이 되었다. 현재 중국미술가협회가 위얼 골목 15번지에 소재하고 있으며, 이 옛 골목에 인문학적 정취를 더하고 있다.

위얼 골목과 북쪽의 마오얼 골목, 남쪽의 숴이 골목이 한 조를 이룬 것도 옛 베이징 사람들의 유머 감각을 보여준다. 비가 내리면 머리에는 모자가 필요하고 몸에는 도롱이가 필요하다. 그래서 북쪽에서 남쪽으로 마오얼 골목(모자 골목), 위얼골목(비 골목), 숴이 골목(도롱이 골목)이 생겼다.  

주소 :北京市东城区南锣鼓巷雨儿胡同

4.야얼 후퉁, 까마귀 골목

적지 않은 외지관광객들은 이미 허우하이(后海)를 가본 적이 있으며, 옌다이세제(烟袋斜街)도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이 거리는 작은 가게들이 가득 차 있어 허우하이에서 꼭 들러야 할 명소 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것은 옌다이 세제 골 서쪽 끝에서 매우 조용하고 오래된 야얼 후퉁(鸦儿胡同)이 이어진다 것이다. 

야얼 골목은 동서 방향이며, 동남쪽에서 서북쪽으로 기울어진 형태로, 동쪽은 샤오스베이 골목(小石碑胡同)에서 부터 서쪽은 구러우 서대가(鼓楼西大街)까지 전체 길이는 약 820미터다. 

명나라 시기 일충방(日忠坊)에 속했으며, 골목 안에 광화사(广化寺)가 있어 '광화사 거리'로 불리기도 한다. 청나라 시기는 정황기(正黄旗)에 속했는데, 골목 위치가 허우하이 북연안에 있어, 옌얼 골목(沿儿胡同)이라 불리게 되었다. 후에 발음상 야얼 골목(鸭儿胡同) 또는 야얼 골목(鸦儿胡同)으로 불렸다. 

야얼 골목 속에는 문화적 저변이 있다. 골목 초등학교 건너편에는 2층짜리 서양식 작은 건물이 있는데, 이곳은 야얼 골목 6호원으로, 작가 샤오쥔의 생가(萧军故居)다. 샤오쥔 일가는 1951년 이곳으로 이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집이 매우 작기 때문에, 한쪽 구석 2평방미터도 안 되는 곳이 글 쓰는 장소였다. 창문도 없어 바람이 잘 통하지 않으며, 낮에 글을 쓰더라도 반드시 불을 켜야 한다.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샤오쥔은 이곳 집필실을 '달팽이집(蜗蜗居)'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곳에서 그는 장편소설 '제3대' '오월의 광산' '오월춘추사화'와 경극본 '오월춘추'를 완성했다.

주소 :北京市西城区什刹海鸦儿胡同(近银锭桥北面)

5. 야오얼 후퉁, 새매 골목

야오얼 골목(鹞儿胡同)은 시청구 동남부에 위치하며, 동쪽에서 첸먼거리(前门大街)에서 서쪽 류쉐루(留学路) 까지이며, 명나라 시기에는 야오얼 골목(要儿胡同)이라 했다가, 청나라 시기에 같은 발음의 야오얼 골목(鹞儿胡同)으로 변하였다. 

여기서 야오얼(鹞儿)은 수리과에 속하는 작은 맹금류로, 학명은 'Accipiter nisus(雀鹰 새매)'로, 몸집은 매보다 약간 작으며, 청대에는 대부분 귀족들을 위해 길들여졌다.

400미터 못 되는 골목에는 일찍이  평개(平介)·부산(浮山)·휘주(徽州) 등의 회관이 있었는데, 그 중 평개회관은 산시성의 평요,개휴 두 현의 재경 상인들이 함께 지은 웅장한 건물이었다. 그리고 청나라 시기 도찰원중성정지휘아문이 있었고, 민국시대에는 시경찰국 수사총대가 있었다.

아직도 골목 속의 평개회관, 부산회관 옛터와 민국시기 경찰국 수사총대 사무터가 있으며, 자료에 근거하여 복원하고, 옛 베이징의 여러 건축 모양을 최대한 살리도록 노력했다. 

지금은 이미 야오얼 골목을 중심으로 주위 여러 골목이 연결되어, 텐챠오 탐방로가 형성되었으며, 시민과 관광객은 이곳에서 옛 베이징 건축의 살아있는 박물관을 볼 수 있다.

주소 :北京市西城区天桥街道鹞儿胡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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