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8월 2일, 베이징시 문물국 어평 부국장(于平)은 "베이징시의 도시 부중심 건설이 대운하 보호공사를 함께 전개시킬 것으로, 아마 13-5 계획기간에 경진기(북경-천진-하북)구간의 운하에 물길이 뚫릴 것"이라고 전했다.
경항 대운하(京杭大运河)의 베이징 구간 문화유산은 40여 곳에 달하며, 그 중 적지 않은 수가 도시 부중심 소재지인 통주(通州)에 있다. 운하 유적에 담긴 이야기와 전설을 소개한다.
1. 통혜하(通惠河) 통주 구간
: 3대에 걸친 식량운반길 - 통주에서 베이징 시내로 향하는 조운 주통로.
통주운하의 옛 사진. 촬영자는 현 로하진 양타촌(潞河镇杨坨村) 인근 강가에서 서쪽을 바라보고 촬영했다. 사진 중 서쪽의 나룻배 위에는 승객들이 가득하다. 다른 한 척의 배는 화물을 실은 배로 돛을 펼친 채 사공이 노를 젓고 있다.
2014년 "대운하"가 세계유산 등재에 성공한 후, 베이징 지역에선 4곳이 포함되었는데, 그중 하나는 통혜하 통주 구간(永通桥-北运河)이다.
통주구간은 중국 대운하의 가장 북방 하천인 통혜하의 끝지점으로, 통혜하와 북운하가 접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기원 13세기 말(원나라 초기)에 건설되었으며, 서쪽으로 영통교(永通桥)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통주 북관갑(北关闸)을 통해 북운하로 흘러들어간다. 길이는 약 5km 다.
통혜하는 원나라 시기 수리공정 전문가 곽수경(郭守敬)이 처음으로 파낸 운하로, 13년에 걸쳐 총 164리를 건설했다. 10리 마다 수문(둑)을 만들고 물을 채워 배가 다닐수 있게하였는데, 총 24곳의 둑과 156개의 다리를 건설하였다. 쿠빌라이 황제가 통혜하라 이름을 하사했다.
통혜하는 원-명-청 3대 왕조에 걸쳐 식량을 운반하는 물길(运粮河)로 사용되었으며, 베이징성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원나라 말기 명나라 초기에 전란으로 인해 수로가 파괴되고 사용이 중지되었으나, 명대 가정(嘉靖), 청대 강희(康熙), 건륭(乾隆) 년간에 모두 통혜하를 보수하였다.
명청시기 통혜하의 수량이 부족하여 배가 베이징 성까지 직접 갈수 없었기에 식량운반이 곤란해졌다. 베이징의 지세가 통주보다 높았기에, 배의 운항을 위하여 다섯 곳에 도크(제방)을 설치하고, 구간을 나누어 운송했다. 동편문(东便门) 바깥 대통교(大通桥)를 시작으로 하여 경풍갑(庆丰闸), 고비점(高碑店 平津上闸), 화원(花园 平津下闸), 보제갑(普济闸) 다섯 곳에 제방과 수문을 설치했다.
배는 제방과 제방 사이만을 운행할 수 있었기에, 각 제방 사이에서는 사람이 양식을 운반하였으며, 결국 다섯 번의 운반을 통해 베이징 성까지 운송할 수 있었다.
후에, 해운과 철도의 발전에 따라, 청 광서 26년에 통혜하의 조운이 정지되었다. 600여 년간 조운을 맡았던 물길이 그 역사적 사명을 다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