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측에 동성화(同升和), 서측에 동인당 (同仁堂), 맞은편에 오유태(吴裕泰)…전통 브랜드가 가득한 다쓰란(大栅栏)거리의 18호 건축은 몇년간 “다쓰란 쇼핑센터”로 사용되었으며, 이제 곧 본업이었던 극장으로 돌아간다.
2년 넘는 재건을 거쳐 경극의 탄생을 증명하는 옛 베이징 7대 극장 중의 하나인 싼칭위안(三庆园)이 7대 극장 중 첫번째로 회복되며, 곧 재개업한다.
현재 극장에는 마지막 인테리어 공작이 진행 중에 있고, 입구의 간판은 붉은 비단천으로 가리워 있고, 네 주위의 시공 울타리는 아직 철수되지 않았다. 관계자에 따르면 높고 큰 통천주(通天柱) 문루는 옛 사진 중에 있는 싼칭위안의 원래 면모에 따라 재건한 것이고, 문루 위에는 유명한 서법가가 쓴 “싼칭 극장(三庆戏院)” 네글자가 씌여져 있다. 이는 싼칭위안이 민국시기 때 사용된 명칭이다.
통천주 문루에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장랑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개업 후 장랑의 양측에는 옛 베이징 극장문화에 관한 사진과 글 자료가 전시된다. 작은 마당을 지나면 바로 극장 홀이다. 극장의 재건은 주요하게 이곳에서 공연한 옛 배우들의 추억과 문자 사료에 따라 디자인한 것이다. 하지만 무대와 무대 뒤는 모두 원 구조상에서 확대된 것이다. 관중석은 여전히 전통적인 찻집 형식을 따랐고, 2층에는 룸이 설치되어 있어 약 200명의 대중들을 수용할 수 있다.
싼칭위안은 경극의 맹아, 형성, 성숙부터 피크까지의 전체 과정을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1790년 휘반(徽班, 휘극을 공연하는 극단) 중에서 싼칭반(三庆班)이 먼저 베이징에 들어섰고, 이후 각 극단이 점차 베이징에 들어섰다. “4대 휘반”이 베이징에 들어선 것은 경극 탄생의 서막으로 여기고, 경극 발전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싼칭위안은 싼칭반의 주요한 공연장소로, 1796년 싼칭반과 옌러쥐(宴乐居)가 공동 경영하여 성립된 것이다. 청창겅(程长庚), 메이챠오링(梅巧玲), 탄신페이(谭鑫培), 상샤오윈(尚小云), 메이란팡(梅兰芳), 멍샤오둥(孟小冬) , 청옌추(程砚秋), 치우성룽(裘盛戎) 등 경극 역사상에서 중요한 유명 배우들이 이곳에서 장기적으로 공연하였다. 동시에 이곳은 경극 역사상에서 가장 이름이 있는 양성소인 “푸렌청(富连成)”의 발원지기도 하다. 때문에 싼칭위안과 광더러우(广德楼), 광허러우(广和楼), 칭러위안(庆乐园), 퉁러센(同乐轩), 칭허위안(庆和园), 중허위안(中和园)은 “베이징 7대 극장”으로 불린다.
이렇게 명성이 자자한 싼칭위안은 운명이 순탄치 못하였고, 두번 불에 탔다가 다시 복건되었다. 1958년 이곳은 경극 공연이 아니라 다쓰란 백화점 종업원 식당으로 되었고, 1972년 건물이 망가진 원인으로 철저히 허물게 되었다가 이후 아주 오랜기간 상업 운영에 사용되었다.
베이징 다쓰란 상업무역유한책임회사에서는 2009년 “베이징 싼칭위안 문화발전유한회사”를 투자 등록하였고, 싼칭위안의 문화가치를 발굴하기 시작하였다. 2010년 제1회 다쓰란 싼칭위안 테마 문화전의 개최에 따라 이미 몇십년 사라진 옛 극장이 다시 경극에 접근하기 시작하였고, 다양한 종류의 희곡 공연행사가 조직되었다. 2014년 7월 싼칭위안 증축 개조공정이 기초를 닦았고, 옛 극장 재건의 서막을 열었다.
재개업 후 싼칭위안은 베이징 펑레이 경극단체(北京风雷京剧团)를 요청하여 공연을 하는 이외에 창작 실내극, 뮤지컬, 곡예도 도입하게 된다. 동시에 연극 팬들에게 행사장소도 제공한다.
재건 후의 싼칭위안 면적은 6000여평방미터고, 극장 뿐만 아니라 “베이징 1796” 전통 브랜드 특색 상업 집결구도 개척하며, 바오두펑(爆肚冯), 양터우마(羊头马), 넨가오첸(年糕钱), 차탕리(茶汤李), 더우푸나오바이(豆腐脑白), 나이라오워이 (奶酪魏) 등 명성이 자자한 전통 브랜드 베이징 먹거리도 도입한다. 또한 뉴란산(牛栏山), 위스위안(御食园), 첸샹이(谦祥益), 다오샹춘(稻香村) 등 중화 전통 브랜드도 있다.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원스톱으로 전면적이고 풍부한 베이징 분위기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