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쟈러우 유적(赵家楼遗址)은 동성구에 위치한다. 원래 명나라 목종(明穆宗) 융경시기 문연각 대학사 조정길(文渊阁大学 赵贞吉)의 저택이었기에 조가루(赵家楼)라 불렸으며, 오사운동 시기, 차오루린(曹汝霖)의 주택이었다.
1919년 5월 4일 오후, 파리협약 체결을 반대하기 위해, 베이징대학, 베이징 고등사범학교, 중국대학 등 3000여 명의 학생들이 '칭다오 반환', '산동 주권 회수', '21조 취소' 등의 구호를 부르며 천안문 앞에 집결하여, 집회를 열었다.
집회 후에, 학생들은 시위 행진을 하였으며, 친일파 북양정부 교통총장 차오루린(曹汝霖), 화폐제도국 총재 루종위(陆宗舆)와 주 일본 공사 장종샹(章宗祥)의 처벌을 요구하였다. 시위 행렬이 동교민항 대사관 구역에서 막혔으며, 성난 시위대가 차오루린의 저택을 불 질렀는데, 역사에서 이를 "조가루 방화 火烧赵家楼"라 부른다.
옛 주택은 전부 철거되었으며, 유적터 위에는 새로이 조가루 식당(赵家楼饭店)이 들어섰다.
中国共产党早期北京革命活动旧址 : 赵家楼遗址
주소 : 城区前赵家楼胡同 1 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