쑹칭링 옛집(宋庆龄故居)은 베이징의 풍경이 수려한 십찰해 후해(什刹海后海) 북쪽 가장자리에 자리한다.
송경령 고거에 들어서면 큼직하면서도 소박하다. 번화하고 시끌벅적한 후해와 비했을 때 이곳은 시끌벅적한 환경 중에 있는 조용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안에는 구불구불한 회랑, 빼곡하게 솟아 있는 산석과 하늘 높이 우뚝 솟은 고목이 있고, 고거의 환경으로부터 송경령의 겸손하고 조용한 본성을 알 수 있다.
송경령의 생애 사적전람관 내에는 송경령이 생전 사용하였던 물품, 편지 및 그녀의 다양한 시기의 사진이 전시되었다.
1963년 4월 송경령이 이곳으로 이사왔고, 1981년 5월 29일 별세했으며, 이곳에서18년을 일하며 생활했다.

국가 3A급 관광지이자 전국중점문물보호물(단위), 중앙국가기관 사상교육기지, 베이징 청소년 애국주의교육기지, 수도문명관광지로 시청구(西城区)의 허우하이베이옌(后海北沿, 후해북연) 46호에 위치해 있는 중국 고대 건축예술 및 중국 근현대사 관광지이다.
청 강희(康熙)연간에 대학사 명주(明珠)의 저택 및 화원으로 지어졌으며, 건륭(乾隆) 연간에는 화신(和珅)의 별장으로, 가경(嘉) 연간에는 처음에는 친왕(亲王) 영성(永瑆)의 저택으로 쓰이다가 나중에는 광서(光绪)황제의 부친인 순친왕(醇亲王) 혁현(奕譞)의 저택 및 화원으로, 청 말기에는 황제 푸이(溥仪, 부의)의 부친인 순친왕 재풍(载沣)의 저택으로 쓰였던 섭정 왕부(王府) 화원이었다.

신중국 성립 전야에는 이미 황폐해져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후에 저우언라이(周恩来, 주은래) 총리가 당과 정부의 위탁을 받아 쑹칭링이 베이징에 거주하던 저택의 건설을 계획해 1961년에 왕부의 정리 작업을 진행시키고, 원래 있었던 건축시설의 서쪽에 2층 건물을 세워 우아하고 쾌적한 가정 정원을 만들어냈다.
1963년부터 1981년까지 쑹칭링은 이 곳에서 죽을 때까지 18년간 생활했으며, 1982년 국가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 명예주석 쑹칭링 동지의 거주지’로 명명했다.
이 곳에는 왕부 화원의 구조와 풍격이 그대로 살아 있으며, 유럽식 별장의 특색을 융합시켜 중국과 서양의 장점이 결합된 정원으로 유명하다. 정원 내부에는 백년 넘은 개아그배나무, 2백년 된 석류말뚝, 5백년 된 펑황궈과이(凤凰国槐, 봉황국괴) 등 유명한 고대 수목들이 있다. 청 강희(康熙) 연간에 대학사 명주(明珠)의 아들이자 청나라 첫 시인인 납란성덕(纳兰性德)은 이 곳에서 시를 짓고 읊었었는데 이 곳에 그가 친히 재배한 고목이은2그루가 있다.
쑹칭링이 키우던 시산쑹(西山松, 서산송), 분재석류(盆栽石榴), 룽옌푸타오(龙眼葡萄, 룡안포도) 등 중국 내에서 유명한 나무 및 꽃들과 그녀가 가장 좋아하던 비둘기들은 정원 내에 평안함을 더해준다.
매년 4월에는 해당화가 피는 시기로 꽃들을 감상하기 위해 오는 관광객들이 끊이지를 않는다. 그리고 관 내부는 ‘쑹칭링 생애 전시전’과 ‘쑹칭링 생활원형전시전’을 통해 그녀의 생활 및 작업환경을 보여주고 있으며, 쑹칭링의 친필•사진 등의 문헌자료 및 개인 소장품 등의 유물 2만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매년 1월 27일은 쑹칭링의 생일로, 5월 29일은 사망기념일로 이 날에는 그에 상응하는 기념활동을 하고 있다.
정원 건축물은 바깥 대청 ‘하오량러취(濠梁乐趣, 호량락취)’, 뒷방 ‘창진자이(畅襟斋, 창금재)’, 동쪽 곁채‘관화스(观花室, 관화실)’, 서쪽 곁채 및 새로 지은 건물과 연결된 채로 구성되어 있다. 정원 내부는 스차하이(什刹海, 십찰해)에서 유입된 물이 순환하고 있으며, 호수 수면상에는 창랑(长廊, 장랑), 언보팅(恩波亭, 은파정) 등이 지어져 있다. 서쪽 산기슭에는 쑤이쑤이핑안타이후스(岁岁平安太湖石, 세세평안태호석)이 세워져 있으며, 산 위에는 사팅(箑亭, 삽정), 팅위우(听雨屋, 청우옥), 구이바오팅(瑰宝亭, 귀옥정) 등의 건축물이 있다.
주소: 시청구 허우하이베이옌 46호(西城区后海北沿46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