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대운하 문화대, 스차하이 곽수경기념관

2019-11-27

과거 경항대운하(京杭大运河)를 통해 남방의 쌀과 비단, 찻잎, 과일이 베이징의 백성들의 생활을 풍부하게 했으며, 자금성을 건설한 일급 벽돌, 목재들도 모두 대운하를 통해 베이징으로 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오랜시간 동안 중국 대륙 남북을 관통하면서 경제와 문화의 동맥으로 자리했었다.

경항대운하의 역사에 대해 말하자면 곽수경(郭守敬)이라는 인물을 빼놓을 수 없다. 1292년, 당시 도수감 곽수경은 경항운하의 연통과 전구간 뱃길 수송을 위하여 통혜하(通惠河) 구간을 착굴했으며, 다음해 가을에 준공했다.

베이징 곽수경기념관(郭守敬纪念馆)은 스차하이 시하이(什刹海西海) 북안의 회통사(汇通祠)내에 위치한다.

기념관 정문 편액에는 '회통사(汇通祠)' 세글자가 적혀 있다. 기록에 따르면, 회통사는 원나라 시기에 처음 지어졌으며, 곽수경이 이곳에서 장기간 원나라의 치수, 수계 건설과 설계 작업을 주관했다. 현재의 회통사는 1988년에 새로 복원한 것이다.

그렇다면 통혜하(通惠河), 스차하이(什刹海, 십찰해). 경항운하(京杭运河)는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대운하의 목적은 베이징성까지의 조운이다. 즉, 베이징성의 발전 요구에 따라, 베이징에서 조건이 가장 유리한 곳이 적수담(积水潭)과 스차하이(什刹海)였다.

스차하이는 다시 전해, 후해, 서해로 나누어지며, 서해는 곧 적수담이라고도 불렀다. 적수담과 스차하이가 통혜하의 수원이었으며, 원나라 시기 경항대운하의 최북단 총괄 조운부두가 되었다.

곽수경 기념관 내에는 곽수경 인물소개, 곽수경이 참여한 수리공정, 통혜하 상의 수문 모형 등이 전시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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