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쇠 옛집 몰입식 연극 '혁명의 불씨', 교과서 장면 재현

2021-06-02

(사진출처 北京日报 方非기자 촬영)

6월 1일, 중국공산당 초기 베이징 혁명활동 옛터가 집중 개방되었으며,  이대쇠 옛집(李大钊故居)에서는 몰입식 연극 <혁명의 불씨(放火者)>가 교과서 속 장면을 재현하며, 참관객들에게 이대쇠 선생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증조부님 만나길 바랐어요"

"이대쇠 선생은 마르크스주의의 중국 전파자로, 그가 가져온 불씨는 한 줄기 빛이 되었다. " 리샤오리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녀는 이대쇠 선생의 증손녀로, 어제 증조부가 살았던 이곳으로 돌아왔다.  "증조할아버지 만나기를 고대했어요" 리샤오리가 말했다.

서성구 문화골목 24번지의 삼합원 건축으로, 고풍스럽고 조용하다. 이대쇠 선생과 부인이 이곳에서 4년 가까이 생활했다. 이곳은 그가 고향 밖에서 가족과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이다. 바로 여기서, 이대쇠는 마르크스주의를 전파하고, 중국공산당을 창건에 큰 공헌을 했다.

원락에 들어서면, 맞은편에 이대쇠 선생의 동상이 있다. 리샤오리는 동상 앞에 서서 증조할아버지에게 순백의 꽃다발을 바쳤다.어릴 때부터 그녀는 부모와 조상들로부터 이대쇠 선생의 혁명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대쇠 옛집 개방의식에 참가하게 되어, 그녀는 매우 기뻐했다. 리샤오리는 말은 별로 많지 않지만, 방 하나하나에 갈 때마다, 오래 머물고 자세히 살펴보곤 했다. 초여름 원락에는 해당화 두 그루가 한창 향기를 풍기고 있다. 리샤오리는 한참 동안 나무 아래를 응시하며, 사진을 찍기도 한다. 당시, 이곳 해당화나무 아래서 이대쇠와 부인이 헤어졌다.

* 학생 교과서 장면 재현

어제, 이대쇠 선생을 만나러 온 한 무리 학생들도 있었다. 이들은 몇 줄로 가지런히 서서 차례대로 앞으로 나와 이대쇠 선생의 동상에 헌화하고 경례했다.

"그해 봄, 아버지는 매일밤 늦게 돌아왔어요, 매일 새벽이며, 언제 나갔는지 모르게 나갔고요. 가끔 그가 집에 있을 때는, 책과 서류 정리에 몰두했지요. 난 그 옆에 쭈그리고 앉아 …"  이대쇠 장녀 이성화가 쓴 <16년 전의 추억>은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됐다. 어제 이대쇠 옛집은 교실로 바뀌면서 아이들은 이 과문을 되새겼다.

"여러분 보세요, 종이로 만든 장기판인데요, 이대쇠 선생 일가가 직접 만들었고요, 제작된 재료는 모두 폐 종이판입니다. ". 해설사가 말했다. 호기심 어린 학생들에게 "이대쇠는 아이 교육을 매우 중시했다"고 설명했다. 빡빡한 업무 시간 외에는 자녀들을 위해 동요를 쓰고 고시를 외우며 혁명의 도리를 들려주었으며, 자녀들을 데리고 장기놀이도 했다. "이대쇠는 아이들에게 말하기를, 장기 한 세트를 사는 데 돈이 얼마 들지 않지만, 돈을 더 유용하게 쓰면 더 값져 보인다" 가이드의 설명이다.

이대쇠 옛집 관리처 주임 유양에 따르면, 이대쇠 생가는 개관 후 청소년 관객들을 대상으로, 이성화와 부친 이대쇠의 생활 이야기를 중점 소개하고, 초등학생 교과서 내용 <16년 전의 기억>을 진술하여, 초등학생의 관람감을 더했다.  테마전시홀에는 <어려운 국운과 건장한 국민> 문장 창작배경과 교육 의의를 비중 있게 소개하고, 교과서 내용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와 시대감각을 높여, 청소년 관객과 이대쇠 선생의 거리를 가깝게 하였다. 

* <혁명의 불씨 (播火者)>가 이대쇠의 옛 일을 재현하다. 

생가에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가 모두 무대가 된다.

몰입식 연극  <혁명의 불씨 (播火者)>가 옛 집에서 공연되었으며, 1시간되 안되는 시간동안, 이대쇠 선생이 작은 원락에서의 생활 이야기를 재현했다. 

"미래의 세상을 봐라, 반드시 붉은 깃발의 세상이다", "우리의 당, 중국공산당이라 불러야 한다"...... 이대쇠의 선언은 고무적이다.  해당화 나무 아래서 이대쇠와 아내 조제란이 이야기를 나눈다. 장자 이보화, 장녀 이성화와 함께 악기를 켜고, 노래를 부른다. 그는 아내의 손을 잡고,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빛에는 온화함이 가득하다. 가족과 헤어지는 이대쇠의 눈에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아내는  "가세요, 이 집은 내가 지키겠다"고 말한다.  "얘들아,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엄마를 보호하라"고 말하곤, 그의 눈에는 다시 의기가 돌았다.

소개에 따르면, 이 극은 《아버지•이대쇠》 상황극을 각색하였으며, 여러 명이 학생들과 서성구 전문 배우가 함께 했다. 이 극은 옛 집을 배경으로 하여, 이대쇠가 1920년부터 1924년까지 이곳에 살았던 때의 창당 행사와 가정생활 에피소드를 취하여, 청년학자의 도움에서 부터 슬하의 자녀교육까지, 이대쇠의 정신적인 풍채와 혁명적인 정서를 재현한 작품이다.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한 비정기적인 공연을 한다.

* 정수 작품 《사학요론(史学要论)》전시 

이대쇠의 고택 내 전람은 원상복원 전시와 <이대회 혁명사상과 실천 (播火者——李大钊革命思想与实践)>으로 명명된 테마 전람 두 부분으로 조성된다. 전시실에는 고화질 복원된 이대쇠의 생존 8초 분량의 영상자료와 1급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이대쇠 사학 사상의 정수 작품인 《사학요론(史學要論)》을 전시하고 있다. 소개에 따르면,  당시 교수 수업은 고정 교재가 없었으며, 이대쇠 선생이 사학요론을 쓴 뒤,  상무인서관에서 인쇄해 교재로 학생들에게 배포했다.  학생수가 적고 존속량이 적어 귀중하다.

이대쇠 부부의 침실 구들가에 서면 서쪽 사랑채 안의 장면을 바라볼 수 있는데, 서쪽 사랑채를 참관하고 나서 뒤돌면 다시 침실을 바라볼 수 있다.  당시, 서사랑방은 당 조직 조기 활동 회의실로 사용됐다. 회의가 열리면, 아내 조제란은 온돌에 앉아 바느질을 하며 망을 본다. 또 수시로 서쪽 사랑채에서 열리는 회의 상황을 체크하고, 회의 진행 상황에 따라 회의 참가자들에게 물을 채워준다.

* 이대쇠 생가 개방 시기

매일 9시부터 16시까지 오픈,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폐관,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개방일 5개의 예약시간대로 개방한다.

이대쇠 생가 위챗 공식 계정에 등록해서, 관람객 실명, 유효 신분증 및 휴대전화 번호를 등록하여,  실명제 예약 관람한다.

각 시간대별 예약관객 50명을 초과하지 않으며, 하루 250명으로 제한된다.

번역 : 실습생 자오솽 北京旅游网 赵爽

北京旅游网翻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