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경황제 隆庆皇帝(1567—1572年)
명 목종 융경황제(明穆宗隆庆皇帝) 이름은 주재후 (朱载垕), 가정16년 (1537) 정월 23일생이다. 명 세종 가정황제(世宗嘉靖皇帝)의 세째 아들이다. 가정 45년 (1566) 세종이 죽고, 주재후가 황위를 계승, 다음해 융경 원년으로 삼았다.
가정 32년 (1553) 주재후는 16세가 되어 유왕저 (裕王邸)에서 독립생활을 시작했다. 유왕저에서 13년 생활을 하며, 사회생활 각 방면에 접촉할 수 있었으며, 명 왕조의 각종 모순과 위기를 이해하게 되었다.
가정 45년 (1566), 가정제 주후총이 죽고, 주재후가 등극했다. 융경제 주재후는 즉위 후에 혁폐시신(革弊施新)의 개혁정책을 실행했다. 즉, 억울한 판결 등을 되돌려 사면 조치들이 이루어졌고, 관리조직 쇄신과 민생안정을 꾀했다.
대외 정책에도 변화가 생겨, 해외 무역에도 신국면이 출현했다. 동시에 군대의 훈련을 강화하고 국경 방어를 공고히 했다.
북방 내몽고와의 갈등을 완화시키고, 호시 무역을 열어, 북방에 안정적인 생활환경을 만들었다. 융경시기의 이러한 조치들은 모두 전대 왕조를 초과하는 것들이었다.
주재후는 융경 6년 5월 26일 36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융정제의 재위기간은 겨우 6년이다. 시호는 목종(穆宗)이며 베이징 창평 소릉(昭陵)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