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시 5A급 관광지 - 팔달령장성 모전욕장성

2019-03-06

- 팔달령장성 八达岭长城旅游区 AAAAA 2007年

팔달령장성(八達嶺長城)은 베이징 옌칭 남서쪽, 거용관(居庸关,쥐용관) 관구북구에 자리하고 있으며 배이징성을 지키는 중요한 전략적 지위를 가진다.팔달령장성은 마루가 높게 솟고, 서북 지역으로 통하고자고로모든 전술가들이 노리는 지역이며 베이징성을 수호한 창문였다. 옛날에‘거용관에 가장 위험한 곳이 관성이 아니라 팔달령에 있다’는 말이 있었다.만리장성의 천백 개 요새중 팔달령 장성은 유구한 역사,웅장한 건축,아름다운 경치로 제일 유명하다.

관성(關城)은 동서 두 관문이 있으며 동문에 “거용외진(居庸外镇)”,서문에 “북문쇄월(北门锁钥)” 이라는 글자가 쓰이는현판이 걸려 있다.문이 벽돌 로 만들며 남,북쪽에 각각 통로가 있어 성벽을 연결한다. 팔달령장성은 산의 능선을 따라 뻗어나가며 말 다섯 마리나 병사 십 명이나란히 통과할 수 있다. 성벽의 기초가 조석이고 위에는 커다란 벽돌 벽각이고,타구(垛口)와 총안이 있어서 적의 침입을 막을 수 있었다.팔달령 장성은 명나라에 인기가 많고 경치가 아름다웠다. “거용첩취(居庸叠翠)”는 연경팔경의 하나이며 ‘천하구새(天下九塞)’의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명나라 말기 학자인 고염무(顾炎武)가 두 번이나 등반하고 “웅탁소지당년대,불단진성자고장(雄托朔地当年大,不断秦城自古长)”이란 시를 지었다.

팔달령 장성의 이름은 어디서 유리하는지 알아보면 역사 기록과 전설이 있기에 재미 있다. 전설에 의해 원나라 때 이름이 ‘파달레레(巴达黎黎)’의 한 황제가 여기서 순행하자 사명했다는 얘기다. 실은 여기서 확실히 원나라 황제 한명이 탄생했으나 이름은 파달레레 아니라 애육레파리팔달(爱育黎拔力八达)이었다. 또한 명나라 말기 이자성이 여기까지 출정하였지만 전방이 여덟 개 요새있다는 보고를 든 후 철군하게 됐다. 실은 가장 믿을 만한 근거이 <장안객화(长安客话)>에 있으며 사방팔방으로 길이 통한다는 뜻의 ‘사통팔달(四通八达)’에서 ‘팔달령’이란 이름이 유래했다.

이미 팔달령 장성은 유엔 세계문화유산명록에서 거재돼 있으며세계 8대 기적의 첫번째로 꼽힌다. 지금까지 찾아오는 관광객이 누계 1.5억명 있었다. 460개 나라의 정상 및 유명인물이 팔달령 장성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

- 모전욕장성 慕田峪长城旅游区 AAAAA 2007年

중국 북방에 동서로 길게 이어진 성벽이 있어 만리장성이라고 불린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만리장성의 웅장함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이다.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자 인류 문명사가 남긴 불후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역사에 의해 중국에서 북방 유목민족의 침공을 막기 위해 성벽을 쌓기 시작한 것은 춘추전국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제후국(诸侯国) 들이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높은 성벽을 지어 규모가 크고 길어서 장성이라고 불린다.

기원전 4세기 때는 초, 연, 진나라는 유목민족과의 접경에 성벽을 쌓아 침공에 대비했으며 이는 이후 진나라 만리장성 최초의 모습이다. 기원전 221년 중국 역사상 최초로 통일 국가를 세운 진나라 시황제는 새로운 국가들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기존의 방어 시설을 파괴해 버렸다. 그런 다음 흉노족을 방어할 목적으로 북방 지역에 거대한 장성을 짓도록 명령을 내렸으며 군사와 백성을 합해 약 30만 명의 사람들이 만리장성 건설에 동원되었다.

진나라가 멸망 후에 서한,동한,북제,북위,요,금,명나라 등이 잇따라 장성을 건설했으나명나라 때 세워진 장성은 기술 및 방어 설치 등 방면에서 크게 발전했다. 청나라의 강희 황제가 회유정책(怀柔政策)을 써서 만리장성을 새로 짓거나 보수하지 않았다.

베이징 시내에서 약 70킬로미터 떨어진 무톈위창청(慕田峪长城, 모전욕장성)은 화이러우취(怀柔区, 회유구)에 위치해 있으며, 징순루(京顺路, 경순로)를 이용해 서북쪽으로 화이러우취를 향해 17킬로미터를 가면 도착할 수 있다.

명나라 때 지어진 무톈위창청은 개국 황제 주위안장(朱元璋, 주원장) 수하의 대장군 쉬다(徐达, 서달)이 지어 후에 치지광(戚继光, 척계광)이 이어받아 개축해서 완성시킨 것으로 지금까지 6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명나라 창청(长城, 장성) 중 보존 상태가 가장 좋은 구간 중의 하나로 1983년에 복원 개발 작업을 진행해 1988년 4월에 정식으로 중국 및 외국 여행객들에게 개방했다. 개방 이후에 “신베이징(新北京, 신북경) 16 경관 중의 하나”,  “베이징 관광은 세계에서 최고” 라는 평가를 연이어 받기도 했다. 1990년 11월 11일 장쩌민(江泽民, 강택민) 수상이 친필로 “무톈위창청”을 쓰기도 했다.

1988년부터 매년 새해 해맞이 행사를 비롯해, 봄맞이 꽃 가든파티, 가을맞이 창청(长城, 장성) 등산 가든파티 등의 전통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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