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병의 유래, 호병에서 월병으로
8월 15일 중추절 이날의 주 음식은 역시 월병(月饼)이다. 월병은 궁병 (宫饼)、단월병 (团圆饼)、 월단(月团) 등으로도 불리우며,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적지 않다.

당나라 고조 이윤 시절, 대장 이정(李靖)을 시켜 흉노를 정벌하라 했다. 리정은 싸움마다 이기며 흉노를 평정했다. 그리고 다시 조정으로 돌아가 고조를 알현한 날이 공교롭게도 8월 15일이었다. 그날 토번 상인 역시 당 고조에게 호병(胡饼)을 바쳤는데, 고조가 먹어보고 매우 좋아했으며, 달을 보며 감격해 "동그란 호병이 마침 동그란 달을 만났구나(应将胡饼邀蟾蜍)" 라 말했다. 그리고 대신들에게 하사하여 맛을 보게하였다. 후에 대신들은 당고조의 이 말에 따라, 호병을 월병이라 불렀으며, 이것이 월병 풍습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월병이 역사를 살펴보면, 그보다 이른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사료 기재에 따르면, 은, 주시기에 절강 일대에 태사 문중(太师闻仲)을 기념하기 위한 태사병 (太师饼)이 있었으며, 이것이 월병의 시조라고도 한다. 한나라 장건(张骞)이 서역으로 사절을 나간 후에, 깨와 호두 등을 중국으로 가져왔으며, 이것이 부재료가 되어 동그란 형태의 호병이 나왔다.
당나라 시기에 이르러, 호병이 월병으로 개명되었다고 한다. 당시 거리 곳곳에서 호병을 파는 노점들이 많이 샜겼다. 어느 해, 당 현종과 양귀비가 중추 달 감상을 하며, 호병을 먹을 때, 당 현종은 호병이란 명칭이 그닥 좋지 않다고 생각했으며, 양귀비가 달빛을 보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어 월병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후 월병의 명칭은 고적에도 발견이 된다. 북송 소동파의 시구 중에 "小饼如嚼月,中有酥和怡"이 있다.
명나라 전여성 <서호유람기(田汝成 西湖游览记)> 에는 "8월 15일을 중추로, 민간에서 월병을 서로 보내며, 단원의 의미를 가진다"라 기재되어 있다.
청나라 시절에는 월병이란 제목의 시,기계악의 <월병 (祁启萼 月饼) > 시도 등장한다.
그외 청나라 시기에 거대한 월병산도 출현하였다. 청나라 건청궁에서 달제사를 위한 월병산은 높이가 수십층에 달하였으며, 황제가 제사를 지낸 후에, 커다란 월병을 잘라 왕공대신, 후궁, 공주들에게 나누었다고 기재되어 있다.
번역편집 나는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