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건축문화여행, 황실 건축군

2023-05-31

베이징은 30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고도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역사 문화 도시이기도 하다. 베이징은 원·명·청 3대 왕조의 도읍지로 규모가 큰 황실 건물로도 유명하다. 황실 건물은 배치가 치밀하고 건축 형식이 다양하며 장식이 화려하여 웅장미가 매우 풍부하다.

* 베이징 고궁 자금성

베이징 고궁(北京故宫)은 명청 양대 시기의 황실궁궐으로, 옛 명칭은 자금성(城禁城)이며, 베이징의 중추선의 중심에 위치하며, 중국 고대 궁정 건축의 경전이다. 베이징 고궁은 3대전을 중심으로 대지 약 72만㎡, 건평 약 15만㎡, 크고 작은 궁궐 70여 채, 가옥 9000여 채 등 세계에서 가장 크고 잘 보존된 목조 건축군이다.

베이징 고궁은 명나라 성조 영락 4년(1406)에 건설되기 시작하였으며, 난징의 고궁을 본떠 영락 18년(1420)에 완성되었다. 남북 길이 961m, 동서 폭 753m의 직사각형 성으로 사방에 높이 10m의 성벽이 둘러져 있고, 성 밖에는 폭 52m의 호성하 해자가 있다. 

고궁 안의 건축물은 외조와 내정의 두 부분으로 나뉜다. 외조의 중심에는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이 있는데, 이를 통칭하여 3대전이라 불렀고, 조정일과 큰 행사를 치르던 곳이었다. 내정의 중심에는 건청궁, 교태전, 곤녕궁이 있으며, 이를 통칭하여 후삼궁이라 불렀고, 황제와 황후가 거처하던 정궁이었다.

베이징 고궁은 세계 5대 궁전(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영국 버킹엄 궁전, 미국 백악관, 러시아 크렘린궁) 중의 하나로, 중국 국가 AAAAA급 관광 명소이며, 1961년 국가 중점 문화재 보호 기관으로 지정되었으며 1987년 '세계 문화 유산 목록'에 등재되었다.

고궁은 현대 건축과 구별된다. 유형으로 보자면 거주 공간으로서 궁궐·토루·사합원, 휴식 용도로 정자·누각이 있고, 관상용으로 가산 등이 있고, 제사와 복을 비는 절, 교통용의 다리 등, 군사용의 성벽, 생산용의 각종 수리공사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 옛 건축물의 형식도 다양하다. 지붕만 해도 현산정, 경산정, 무전정, 헐산정, 첨전 등 형식이 있다. 고건축의 기법으로 보아도 다양한 방식의 연결 기법이 사용되었다. 그 건축사상은 실용을 중시하면서도 아름다움의 추구를 소홀히 하지 않고 천인합일을 강조하며 시대와 함께 발전하는 것을 추구한다.

* 왕부건축 공왕부

공왕부(恭王府)는 청나라 시긴 가장 큰 규모의 왕부 건축군으로, 청나라 왕조의 전성에서 쇠퇴까지의 역사적 과정을 목격하였으며, 매우 풍부한 역사 및 문화 정보를 담고 있어 '공왕부 하나가 청나라 역사의 절반'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다.

건륭제 49년(1784년), 당시 화신(和珅)이 이 저택을 짓는데 최소 4년이 걸렸다. 함풍 원년(1851년) 정계의 풍운아 공친왕 혁흔이 저택의 주인이 되면서 '공왕부'라는 이름이 붙었다.

왕부는 약 6만㎡의 부지에 30여 개의 건물 군락을 갖추고 있다. 왕부 뒷편에는 화원이 존재하며, 취금원(萃锦园)이라고도 불리는데, 청 건륭 42년(1777년)에 조성되었으며, 고증에 의하면 명나라의 옛 화원터에 재건하였다고 한다. 전체 화원 부지 면적은 28,000제곱미터이다. 왕부 건축들은 동, 중, 서의 세 갈래로 나뉘며, 각 노선은 남과 북의 엄격한 중추선으로 관통하는 다진 사합원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왕부 내 '서양문' '복자비' '대극루'를 합쳐 공왕부 삼절(三绝)이라 부른다. 대극루는 동치 연간에 건립되어 공친왕과 그 친지들이 연극을 관람하던 장소이다. 이 극루는 중국에 현존하는 유일무이한 완전폐쇄식 대극루로 건축면적이 685㎡이며, 대극루 전체가 벽돌과 목조건축임에도 쇠못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극장은 박진감 넘치는 소리를 위해 무대 밑을 비운 뒤 몇 개의 큰 항아리를 설치했고, 교묘하고 특수한 구조로 공명혼향 공간을 넓혀 관객이 어느 위치에서나 배우의 노래를 또렷하게 들을 수 있도록 했다.

복자비는 길이 7.9m로 전체가 가산에 끼워져 있으며, 청 성조 강희황제의 어필로 새겨졌다. 강희제는 서예에 조예가 깊었으나 글씨를 쓰는 일이 드물어 이 '복'자는 귀한 글씨가 되었다.  이 글자는 고풍스러우면서도 힘이 있고, 기세가 넘치며, 그 구상이 절묘하여 가희 천하제일 복(福) 이라 할 수 있다.

서양문은 화원중로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화원의 정문으로 '정함태고(静含太古)'라고 불리며 혁흔이 지었다. 문은 한백옥석으로 조각되어 원명원의 대수법해원문을 본떠 만든 서양 아치형 스타일로 매우 기품있다. 문 바깥측에 정함태고라 새기고 안측에는 '수양항춘'이라고 새겼는데, 그 중 정과 수는 정원 주인이 달성하기를 원하는 두 가지 경지를 의미한다.

* 황실사원 옹화궁

옹화궁(雍和宫)은 베이징 북2환의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베이징에 현존하는 가장 큰 티베트 불교 사원이다. 최초에 청나라 옹정황제가 즉위하기 전의 왕부 저택이었으며, 건륭제 때에는 라마묘로 개조되어 청나라 정부의 전국 라마교 업무를 관리하는 중심이 되었다.

용화궁은 약 66400㎡의 부지에 한·만·몽·장 등 민족 건축물을 아우르는 독특한 예술 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규모가 큰 불가의 정글, 제왕의 종교 행사장 및 몽·장 상층부를 연결하는 특수한 역사적 역할로 유명하다.

옹화궁의 남북 거리는 약 400m 이며,  3개의 정교한 패방과 옹화문전, 옹화궁전, 영우전, 법륜전, 만복각, 수성전 등 육진대전과 칠진원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서 양쪽에 강경전, 시륜전, 약사전, 밀종전, 야마다갈루, 조불루 그리고 문화재 전시실로 벽작된 계대루, 반선루가 있다. 건축의 배치가 치밀하고 기세가 웅장하다. 경내에는 돌사자, 보방, 전당, 정자, 누각이 모두 갖추어져 있고, 유칠채화가 화려하며, 중국 사찰 건축 형식의 완전한 구현일 뿐만 아니라 불교 건축 양식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옹화궁 대전은 원래 은안전(银安殿)이라 불렸으며, 옹친왕이 문무관료들을 접견하던 장소였다가, 라마묘를 개축한 후에 일반 사찰의 대웅보전에 해당하게 되었다. 지붕은 황유리 통기와 헐산정, 면적은 7칸 크기이고, 앞에 월대가 있다. 담장은 황·녹·홍 유리벽돌 문양벽이 감싸고, 명간 위에 걸린 편액에는 만족, 한족, 몽골, 티베트의 4개 문자로 옹화궁이라 새겨져 있다.

* 경산 수황전 

경산 수황전(景山寿皇殿) 건축군은 명나라 때 조성되었으며, 부지 면적 약 2만1256㎡, 총 건축면적 3797.68㎡ 규모로, 현재의 수황전은 청 건륭 14년(1749년)에 건립되었다. 수황전 건축군은 내외 2층 원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체 건물은 태묘의 규제를 본떠 지은 것으로 중국 고대 최고 등급의 건축양식이며, 베이징 중추선에서 고궁을 제외한 두 번째로 큰 건축군이다.

수황전은 태묘(太庙)를 본떠 지은 것으로 정전과 동서배전, 그리고 신주·신고·비정·정정 등의 부속건물이 있고, 전당 앞에는 보방·돌사자 등이 있고, 담장은 네모난 모양으로 남향 건축이다. 수황전 지붕은 황유리 통기와 겹처마 무전정 형식이며, 윗처마에는 두공과 새채화를 얹었다. 수황전 크기는 면은 9칸, 깊이는 3칸으로 앞뒤로 복도가 있다.  대전 앞에는 난간을 두른 월대가 있고, 정중앙에 어로가 있으며, 용조각이 되어 있다. 

대전 앞쪽에 극문이 있고, 극문 바깥은 원락이 있다. 이 중 남쪽 벽 중앙에 패루식 아치형 문이 3개 있고, 문 앞에는 돌사자 한 쌍이 있다. 남문 밖에는 보방이 3개 있다.

청나라시기에 경산 수황전은 황실의 조상제사를 지내는 장소로, 수황전에 제후어영을 배치하고 매년 황제가 절령제사일와 관련규정에 따라 경산 수황전에서 조상제사를 지내도록 하였으며, 수황전 건축군은 중화민족의 제사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황실의 제사예악과 경조, 효도문화를 구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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