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왕부(恭王府)는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이며, 청나라 시기 규모가 가장 큰 왕부로, 이 저택의 첫 주인은 건륭 시기의 권세를 누린 화신(和珅)이었다. 후에 가경4년(1799) 화신이 실각하면서, 가경(嘉庆)제의 동생인 영린(永璘)이 물려받아 살게 되었다. 함풍 초년(1851년(에 이 저택은 의정왕이자 군기령반대신 등 요직을 겸한 공친왕 혁흔(奕訢)이 세 번째 주인이 되면서 처음으로 공왕부로 불리게 된다.

공왕부는 청나라 왕조의 번성에서 쇠망하는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풍부한 역사·문화적 정보를 담고 있어 '하나의 공왕부가 청나라 역사의 절만을 담았다'라는 말이 있다.

공왕부의 규모는 큰 편으로, 부지 면적 약 6만 평방미터 규모에, 저택과 화원으로 나뉘어 있다. 화원은 일명 금취원(锦翠园)이라고도 불리며, 내부 배치와 디자인이 높은 예술적 수준을 자랑한다. 그 설계는 사실 황궁 안의 영수궁(宁寿宫)을 모방한 것이다.
궁왕푸는 청나라 친왕(亲王)의 저택으로 질서정연한 건축물의 배치, 정교한 공예, 교차된 누각 등을 통해 황실의 휘황찬란한 아름다움과 서민들의 수수하면서도 우아함을 갖춘 자태를 보여주고 있다.
주소 :北京市西城区前海西街17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