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황 막고굴(敦煌莫高窟)
돈황 막고굴은 돈황시 동남쪽에서 25km 떨어진 대천구 하상 서안, 명사산 동쪽기슭 벼랑에 위치해 있다. 전하는데 의하면 그때 락존이라고 하는 한 승려가 중원에서 명사산 아래에 왔는데 홀연히 산 우에 금빛찬란하더니 마치도 천만존의 불(佛)상이 금빛속에 나타나는것 같았다.
락존승려는 이것이야말로 하나의 성지라고 인정하고 돈을 모아 가파로운 절벽에 첫 석굴을 파고 자기가 거기에 앉아 경을 읽게 하였다. 그후 다른 승려들이 이곳에 참배하러 왔다가 락존동굴옆에 두번째, 세 번째 동굴을 련속 건조하였다.
동굴은 전 진나라 건원 2년(기원 366년)에 파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491개의 동굴에 2400여개 조각, 45000m²의 벽화를 보존하고 있는 세계에 현존하고 있는 규모가 제일 방대한 “세계예술보물고”이다.
1987년 12월에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유산명록"에 수록되였다. 막고굴예술의 특징은 건축과 조각상, 벽화 삼자가 유기적으로 결합된데 있다. 산수화, 공양화, 동물화, 장식화 등 부동한 내용으로 16개국, 북위, 북조, 수나라, 당나라, 오대, 송, 서하, 원나라 등 십여개 조대와 동서방 문화교류의 제 측면들을 반영한 인류의 보기 드문 문화보물고이며 재부이다.
1990년 막고굴의 장경동에서 5만여권의 종교문서와 세속문서를 발견한후부터 돈황예술은 세계를 뒤흔들어 놓았으며 돈황학은 이미 세계적인 현학으로 되였다. 일본이 자금을 증정하여 막고굴 맞은편 삼위산아래에 돈황예술진렬센터를 건설하고 일부 원래의 대동굴을 모조해 만들므로써 관광객들로 하여금 막고굴에서의 감상내용을 더욱 풍부히 하고 다채롭게 하고 있다.
돈황은 고대 비단의 길의 중요한 도시로서 래왕하는 상인들과 관광객들이 옥문관과 양관에 드나들 때 늘 막고굴에 와 향불을 피우며 려로의 평안을 빌었다. 어떤 사람들은 돈을 기증하여 동굴을 파기도 하면서 보살의 보호에 감사를 드렸다. 당나라 무측천(기원 690년-기원 704년)시기에 이미 천여개의 불단을 팠는데 “천불동(千佛洞)”이라 하였다. 장기간의 비바람과 인위적인 파괴로 하여 지금 여전히 보존되고 있는것은 북량, 북위, 북주, 수, 당, 오대, 송, 서하, 원나라시기의 동굴 492개가 있다.
최근 수십년래 국내외학자들은 돈황예술에 대하여 막대한 흥미를 가지고 있어 하나의 전문학과인 “돈황학”이 형성되였다.
제17굴
당나라 말엽(기원 836년-기원907년)의 장경동(藏经洞)이다. 16굴 룡도 좌벽에 있는 작은 동굴이다. 1900년 6월 25일에 도사 왕원록에 의해 발견되였다. 동굴안에는 경권문서 약 5만권이 수장되여 있으며 기타 문물은 이루다 헤아릴수 없다. 매매계약, 전당문서, 호적부 등이 있고 또 력사, 천문, 력법, 의학, 지리 등 자료도 있다. 이러한 자료들은 중국 고대 경제, 문화 등을 연구하는데 중대한 력사과학적 가치가 있다. 1900년-1924년기간에 영, 프, 미, 일, 로씨야 등 나라 사람들이 이곳에 와 대량의 진귀한 문물들을 략탈해 갔다. 특히 1907년과 1914년에 영국인 스탄인이 선후로 두번이나 돈황에 와 사본, 연화, 자수 등 1.2만여점을 겁탈해 갔다. 이밖에 일본의 미사이 미쯔이(橘瑞超),미국의 화르나(華爾納) 등도 뒤이어 와 많은 진귀한 문물들을 훔쳐갔다.
제61굴
5대(기원 907년-기원 960년)의 원명은 문수당이다. 동굴내에는 중심 불단을 설치하였다. 이 동굴의 벽화중 특히 서벽의 약 40m²되는 한폭의 오대산 대형벽화는 내용이 풍부하고 색채가 아름답다. 이러한 벽화들은 당시 이 지구와 신강위글족인민들간의 화목한 친선래왕관계를 반영해주고 있다.
제96동굴
당나라 초엽 무주증성 원년(기원 695년)에 건조한 막고굴에서 제일 큰 동굴이다. 한편 정대불동굴이라고도 한다. 동굴안에는 미륵대불이 있다. 이 대불은 무칙천이 황제로 즉위한 여섯번째해에 건조한것이다. 무칙천은 중국 력사상의 유명한 녀황일뿐만아니라 또한 유명한 불교도이다.
출처 인민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