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명승] 고궁박물원
태극전(太極殿)
태극전은 명, 청시기에 비빈들이 거처하던 곳이다. 태극전은 우아하고 아늑한 궁전이다. 명, 청시기에는 미앙궁(未央宮)라 하였는데 이런 이야 기가 전해지고 있다.
명나라때 강남에서 출생한 한 녀자가 어려서 가정이 하도 곤난하여 항주에 있는 한 태감에게 팔렸다고 한다. 큰 다음 태감이 황궁에 보내여 수녀선발에 참가하게 했는데 과연 수녀로 당선됐다. 그가 바로 명헌종 성화 황제의 소귀비이다. 소씨가 황궁에 들어갈 때 아주 순조롭지 못했다. 당시 헌종 황제의 총애를 받던 만귀비가 후궁에서 살기등등하게 노는 통에 비빈들은 기를 펴지못했으며 누구도 감히 그를 넘겨보지도 못했다.
소씨는 어려서부터 시를 쓰기를 배웠는데 전하는데 의하면 당시 천수를 외웠다고 한다.
어느날 저녁에 그가 바로 자기가 새로 지은 홍엽시(붉은단풍)를 읊조리는데 마침 어원에서 산책하던 황제가 듣게 되었다. 헌종황제는 그의 문채와 미모에 마음이 흔들리게 되었다. 이때로부터 황제의 총애를 받게 되어 그를 신비로 봉하고 이곳에 있게 하였다.
얼마 후 황자를 낳고 귀비로 승진하였다. 허지만 웃으며 살날이 오래가지 못했다. 황제가 죽고 효종(孝宗)이 즉위하자 그의 아들은 흥왕으로 임명받고 멀리 호북 속지로 가게 되었으나 아들을 따라 갈수 없어 모자가 갈라지게 되었다. 32년후에 그의 아들이 호북에서 병으로 죽자 소귀비는 날마다 눈물로 얼굴을 적시였다. 2년후에 그의 두 눈이 멀고 말았다.
원래는 여생을 이렇게 처참하게 보내리라 생각하였는데 외려 뜻밖으로 희극적인 변화가 발생하게 되었다. 효종이 즉위하여 15년만에 병으로 죽었다. 그는 아들도, 형제도 없어 대신들과 상의한 끝에 흥왕의 아들,말하자면 소귀비의 친손자 주후더러 황위를 계승하도록 하였다. 그가 바로 후의 가정황제(嘉靖皇帝)이다. 15살에난 가정 황제가 백발이 성성한 두 눈을 실명한 조모앞에 나타났 을 때 소씨는 너무도 기뻐 통곡하고 말았다. 가정이 즉위 한후 소씨를 황태후로 임명하였다.
소씨태후는 자기가 황궁에 들어간 갖가지 가슴 아픈 일들을 가슴속에 새겨 두었다. 그래서 다음부터 궁녀를 선발할 때 더는 강남에 내려가지 못하게 명령하였다.
소씨태후가 세상 뜬 후 가정황제는 그의 조모가 거주하던 곳과 아버지가 출생한 곳을 기념하기 위해 길상스러운 이름으로 계상궁(啓祥宮) 이라 개칭하였다.
출처 인민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