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명승] 하북 한단시 황량몽(黄梁夢)

2021-04-01

황량몽(허황한 꿈)은 한편 려선사라고도 한다. 한단시 북쪽에서 10km떨어진 황량몽촌에 있다. 이것은 한 조의 고대사당으로서 금, 원시대에 건조하고 명나라 때에 확건하였다. 사원의 면적은 13000m2, 주요 건축으로는 종리전, 려조전, 로생전이 있다. 로생전은 황량몽의 유람에서 중심이다. 전내에는 옹궁 청석조각으로 된 침대와 이어진 노생석각와상이 있다. 로생은 침대에 비스틈히 누웠는데 머리밑에는 방형베 개를 베고 두 다리를 약간 구부정하게 폈으며 얼굴이 말끔히 생겼고 두 눈을 살풋이 감고 꿈나라에 들어가고 있다. 북벽에는 벽화가 있는데 황량몽 이야기를 구술하고 있다.

황량몽이야기는 원래 당대 심기제작《침중기》전기에서 온것이다. 당나라 개원7년(기원 719년)에 로생(盧生)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늘 나귀를 타고 다녔으며 헝겁으로 지은 짧은 옷을 입고 서울에 과거시험 치러 가는 길에 한단 객점에서 도사 려옹을 만나 곤난해서 고생해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자탄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낙심하지 않고 공훈을 세워 일자리도 얻고 관리로 승급해 돈도 벌어 백만장자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려보려고 골돌히 생각하였다. 려옹은 그에게 청기와벽돌 을 베라고 하면서 이 베개를 베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하였다. 이때 객점주인은 좁쌀 죽을 쑤고 있었다. 노생은 베개를 베자마자 잠들어 꿈나라에 들어갔다. 꿈에 그는 산동에 있는 고향에 돌아가 최씨라는 미모의 아내를 맞았다. 후에 진사를 되어 감찰어사로 승진하였으며 몇번의 파란곡절을 거쳐 공훈이 있다하여 중서령으로, 연나라 국공으로 책봉받았다. 다섯 아들도 모두 높은 벼슬에 많은 녹봉을 받게 되고 대가문의 딸을 아내로 삼아 아들 손자 수두룩하게 되었다. 즉위하야 50여년동안에 부귀영화를 마음대로 누렸다. 80이 돼서 병으로 죽었다. 이때 로생이 몸을 뒤쳐 누우며 그만 잠을 깨게 되었다. 과연 일장 허황한 꿈이였다. 여옹은 옆에서 피식 웃었다. 객점 주인이 끓이던 좁쌀죽도 채 되지 않았다. 로생은 그제야 각오하고 도사를 따라 나섰다. 《침중기》는 전문이 1800자가 되나마나 하지만 후세에 심원한 영향을 미치었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에 근거하여 황량몽사원을 지었을 뿐만 아니라 인생철학에 대한 후세인들의 장기적 인 쟁론을 일으켰다.

래원: 인민넷 (편집: 김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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