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 (万里长城) - 중화민족의 위대한 상징.
팔달령 장성 (八达岭长城)은 중국 만리장성의 가장 걸출한 대표이다.
팔달령장성은 베이징 서북 60km 지점의 연경구 경내에 위치한다. 관성 및 그 부속 성벽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서북에서 베이징으로 통하는 요로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지세가 험요하여 예로부터 북문쇄월 (北门锁钥)이라 불리며, 경기 지역을 지키고, 베이징성을 호위하는 중요한 요새였다. 팔달령에서 거용관을 내려보면 마치 물동이 같고, 마치 우물같은 형상인데. 옛 사람들은 "거용의 험준함은 관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팔달령에 있다 (居庸之险,不在关城,而在八达岭)" 라 표현했으며, 이는 그 전략지위가 극히 중요함을 말한다.
팔달령 장성 성벽은 조석条石), 청전(青砖)으로 산에 의지하여 건축했으며, 성벽 중요 지점에는 성대(墙台)와 적대(敌台)를 설치했다. 팔달령 장성은 지세가 험요하며, 성벽은 높고 크고 견고하며, 적대는 밀집되어 있고, 기세가 웅장한 것이, 중국 고대 건축의 극치를 보여준다.
팔달령 장성 역사는 유구하고, 문화 저변은 깊다. 진시황이 동족 발해 인근까지 왔다가 함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팔달령 앞에서 하늘을 보고 길게 탄식했다고 한다. 원 순제가 야간에 흑송림을 갈때, 숨죽여 울며 팔달령을 넘었다고 한다. 명 영락제 주체가 막북을 정벌할때, 팔달령 앞의 군산들을 두루 보았다고 한다. 강희제가 가고얼을 정벌에 나설 때도 팔령령에서 전략을 세웠다고 한다. 강희 건륭 성세기간, 두 황제는 팔달령의 시구를 지었다얼고 하며, 자희태후가 서로 도망칠 때, 망경석에서 비참한 눈물을 흘렸다고도 한다. 탁발씨.(拓拔氏)가 지은 담벽, 척계관이 지은 돈대에 이르기 까지 하나하나의 이야기들, 전쟁과 왕조의 대체 등등 팔달령의 장성의 발전과 역사의 발전을 견증하고 있다.
신중국성립이후, 인민정부는 장성의 보호를 매우 중시여겨, 1953년부터 대량의 인력, 문자, 재력을 투입하여 보수와 재건을 했다. 현재 팔달령 장성의 대외개방 길이는 3741미터이며, 성대와 적대가 21개 포함된다.
오늘의 팔달령 장성은 이미 세계문화교류의 역사무대가 되었다. 이미 20여 년간 국제 등산 행사를 했으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봉화 의식 행사, 2019년 베이징 세원회 카운트 다운행사 등등 많은 행사를 해왔으며, 세계 각국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으며, 광범위한 국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팔달령 장성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이지 국가중요 귀빈접대 장소이다. 지금까지, 해외 관광객 2억명 이상을 접대했으며, 그중에는 닉슨, 만델라, 엘리자베스 2세, 대처 부인, 아들 부시, 푸틴, 오바마, 하퍼 등 500여 명의 세계 각국 정상 및 정부 주요 인사, 스포츠 스타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