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화운동과 오사운동

2019-05-01

* 반제국주의 반봉건주의 애국운동, 오사운동

오사운동(五四运动)은 1919년 5월 4일에 베이징에서 발생한 청년학생중심의 학생운동으로, 수많은 군중, 시민, 상공인 등 중하층이 참가한 애국주의 운동이다. 2019년이 바로 오사운동의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반제국주의, 반봉건주의 애국운동의 성격을 지닌 오사운동은 중국 구민주주의 혁명의 끝이자 신민주주의 혁명의 시작점이다. 오사운동은 중국 혁명사중 한 획을 긋는 사건으로, 중국에 맑스레닌주의 전파와 노동운동의 결합을 이끌었으며, 중국공산당의 창립준비의 조건이 되었다.

1840년 아편전쟁 이래로 중국 국민들은 제국주의 침략과 봉건주의 압박에 반대하여 70여 년 동안 투쟁을 전개하였으나, 태평천국봉기 의화단운동, 신해혁명 등을 비롯한 그들의 민족운동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1917년 러시아에서는 10월혁명이 발발하여 무산계급이 정권을 장악하는 사회주의 국가를 건립하였다. 러시아 10월혁명의 영향 하에서 중국에서는 이대소(李大钊), 진독수(陈独秀),모택동(毛泽东) 등과 같이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고 전파하는 지식인들이 출현하였다. 그들은 새로운 혁명사상을 선전하면서 무산계급혁명을 선동하였다.

새로운 정세와 혁명사상의 영향으로 1919년 5월 4일 중국에서는 철저한 반제(反帝) 반봉건(反封建) 혁명운동이 발발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유명한 '5 4운동(五四运动)'이다. '5 4운동'은 먼저 북경대학의 학생들에게서 시작되었는데, 3천여명이 천안문광장에 집결하여 중국 정부의 대표가 '파리강화조약'에서 국가의 주권 포기에 서명하는 것을 반대였다.

항의시위가 북양군벌(北洋军阀)정부의 진압을 받게 되자 중국민들의 분노는 전국적으로 확대되었으며, 그리하여 북경에 이어 상해(上海) 등 주요 도시의 노동자 학생 상인들도 모두 동맹파업을 하면서 대규모의 항의시위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북양군벌 정부는 하는 수 없이 구속된 학생들을 석방하고 3명의 매국노를 관직에서 파면시키고 "파리강화조약"의 서명을 거절하게 됨으로써 5·4운동은 성공을 거두었다.

'5 4운동'은 중국 무산계급의 거대한 혁명역량을 최초로 드러낸 것으로 마르크스주의와 중국 혁명운동의 결합을 촉진시켜 중국공산당의 탄생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5 4운동'은 중국의 근대사와 현대사를 구분하고 구민주주의 혁명과 신민주주의 혁명을 구분하는 지표가 되었던 것이다.

* 반봉건 사상문화 운동, 신문화운동

신문화운동(新文化运动)은 1919년 오사운동(五四运动) 폭발전후의 시기의 지식인들은 중심으로 한 문화운동을 말한다.  호적(胡适), 진독수(陈独秀), 노신(鲁迅), 전현동(钱玄同), 이대소(李大钊) 등 서방교육을 받은 일부 지식인들이 발기한 "반전통, 반유교, 반문언(반 문어체)"의 사상문화혁신 및 문학혁명 운동이다.

1915년, 진독수는 그가 주관하던 <신청년(新青年 원명 청년잡지)>에 실은 문장에서 민주와 과학( 德先生”与“赛先生)을 제창했다. 이 운동은  2000여 년간 중국을 통치한 전통 예법과 도덕에 큰 타격을 주었으며, 사람들의 민주 각오를 깨우치고, 현대 과학의 발전을 추동하였으며, 중국에서 마르크스 주의의 전파와 오사애국운동의 중대한 사상적 기초를 제공했다.

신문화운동은 반 봉건을 전면화하였기에, 중국의 모든 전통문화는 모두 "반" 봉건의 부류에 포함되었으며, 이로인해 신문화운동은 중국고전문화 몰락의 발단이기도 했다.

* 오사운동 및 신문화운동의 발원지 베이징대학 홍루 (신문화운동기념관)

당시 베이징대학 홍루는 신문화운동(新文化运动), 오사운동(五四运动)의 발원지로, 중국 근대혁명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베이징대학 홍루(北京大学红楼)는  전체 건축이 홍색벽돌과 홍색기와로 이루어져 홍루라 불리게 되었다.

베이징대학의 지식인들은 홍루에서 러시아 ‘10월 혁명’의 영향 아래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고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중국에 최초로 마르크스주의 간행물을 창간하기도 했다. 이는 중국신민주주의 서막을 알리는 ‘오사’운동이 바로 이곳에서 시작됐음을 상징하고 있다.

일제 침략 때 이 곳은 일본 헌병대의 기지였으며 지하는 중국 혁명군과 애국주의 지사들의 감옥과 고문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1945년 8월 일본이 항복한 후 베이징대학은 다시 이 곳에 복원됐으며 2002년 4월 베이징 신문화운동기념관(新文化运动纪念馆)이 정식으로 개관됐다.

신문화운동기념관 新文化运动纪念馆

주소:北京市东城区五四大街29号

개방시간 :  9:00- 16:30 (4시전 입장, 월요일 정기휴관)

티켓 : 무료, 신분증 (여권) 지참 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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