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3대문화대 - 서산문화대 볼거리

2020-06-29

 

서부 서산문화대 西山文化带 : 황실원림과 근현대 역사문화경관.

서산(西山)은 베이징 서부 산지의 총칭으로, 태항산맥(太行山脉) 최북단에 속하는 태행의 머리부분으로, 고대에는 '신경우비(神京右臂, 베이징성 오른팔)' 라 하여 베이징 성을 호위한다고 했다.

'서산문화대(西山文化带)'는 베이징 문화의 중요조성부분이자 전시교류 창구로, 매우 높은 역사지위와 종합가치를 가지고 있다. 베이징 문명의 근원, 역사의 뿌리, 문화의 혼이라 할 수 있다. 역사시기 전부터 당대 역사시기까지를 포함하여, 문화유산과 풍경명승지가 많으며, 문물보호단위도 많아, 세계유산급, 국가급, 시급 등 문물보호단위가 400여 곳에 달한다.

 

<주요 관광지>

* 향산 香山

향산(香山)의 최고 봉우리에는 두 개의 거대한 암석이 있으며, 마치 향로처럼 생겼다 하여, '향로산(香炉山)'이라 이름지어졌다가, 후에 간단하게 '향산(香山)'으로 불리게 되었다.

정의원(静宜园)은 과거 삼산오원(三山五园)의 하나로, 정의원이 곧 오늘날의 향산공원이다. <香山公园志> 기재에 의하면, 금나라시기에 시작되어 황실에서 대규모 공사를 통해, 사찰을 짓고 "대영안사(大永安寺)"라 명명했다.

원나라 인종시기 큰 돈을 들여 대영안사를 새로 지었으며, "감로사(甘露寺)"라 명명했다. 명나라 영종 주기진(朱祁镇)은 정통6년부터 향산에 대규모 토목공사를 시작하였다.

청나라 강희황제 역시 향산을 풍수가 좋은 곳으로 여겨, 이전 행궁자리에 "향산행궁(香山行宫)"을 건설하였다. 건륭황제는 즉위 후에 확장건설을 하였으며, 크고작은 원림경관 80여 곳을 건설하였으며, 그중 친히 시구로 표현한 곳이 28곳으로, 이것이 바로 "정의원 28경" 이다. 동시에 이곳 황실원림을 "정의원(静宜园)"이라 명명하고, 정의원 편액을 직접 적어, 동궁문 바깥에 걸었다.

향산은 여름에는 무성한 녹음을 자랑하고 가을이 되면 어느새에 온 산의 푸름이 붉고 노란 단풍으로 변해 산 전체가 불에 타는 듯 열정적으로 되어 버린다.

 

 

* 이화원 颐和园

이화원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황실원림으로, 베이징성과는 약 15km 떨어진 서북쪽에 위치한다. 과거에  삼산오원(三山五园)의 하나인 청의원(清漪园)이라 불렀으며, 1888년 에 은화 3000만냥과 10년의 시간을 들여 재건 후에 이화원으로 개명하였다.

이화원의 규모는 매우커서, 점유면적은 293헥타르에 달하며, 주로 만수산과 곤명호 두 지역으로 조성되어있다. 각종 형식의 궁전원림건축이 3000여칸으로 행정, 생활, 유람 세 가지 기능적 구분을 할 수 있다.

동부 궁전구와 내정구는 전형적인 북방 사합원(四合院) 풍격으로, 폐쇄적인 원락들은 유랑(游廊, 외부복도)을 통해 서로 이어진다. 남부의 호수 구역은 전형적인 항주 서호(杭州西湖)의 풍격으로 뚝길 하나가 호수를 양분하고, 강남의 격조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만수산(万寿山)의 북면은 전형적인 티베트 라마사원의 풍격으로, 백탑, 보루식 건축이 있다. 북부의 소주가(苏州街)는 점포들이 물가를 따라 세워져 있는 전형적인 물의 고장 풍격이다.

이화원의 전체 원림예술구상은 매우 뛰어나며, 전세계 원림예술사에서도 그 지위가 현저하다. 보기힘든 원림예술의 걸작이다.

 

* 원명원 圆明园

베이징 서쪽 교외, 이화원 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 원명원(圆明园)은 원명원(圆明园), 장춘원(长春园), 만춘원(万春园) 3원을 통털어 일컫는 말이다.

원명원은 1709년 강희재 때 건축되기 시작돼 건륭제까지 6대 150년에 걸쳐 건축한 중국의 대표적인 황가원림으로써 ‘정원 중의 정원(万園之園)’이라 불리던 청대 황실의 정원이다.

원명원은 1709년 강희제(康熙帝)가 네 번째 아들 윤진에게 하사한 별장이었으나 윤진이 옹정제(雍正帝)로 즉위하자 1725년 황궁의 정원으로 조성했고 그 뒤 건륭제(乾隆帝)가 바로크식 건축양식을 더하여 원명원은 동,서방의 건축풍격이 공존하는 "만원지원"으로 거듭났다.

장춘원의 북쪽 일대에 자리 잡은 서양루(西洋楼)는 중국 최초의 유럽식 원림이며 오늘날 대외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곳으로 원명원의 정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60년 제2차 아편전쟁 당시 안타깝게도 건륭제가 아꼈던 서양루를 포함한 원명원 전체가 영, 프 연합군의 침입에 의해 대부분 소실되고 만다.

 

* 주구점 원인유적 周口店猿人遗址

주구점의 <베이징인>의 유적지는 베이징시 서남의 48킬로미터 떨어진 방산구(房山区) 주구점촌의 용골산(龙骨山)에 위치해 있다.

주구점 부근의 산지는 석회암이 많아 수력의 작용으로 크고 작은 천연 동굴을 형성했다.

산 위에 동서 길이가 대략 140미터 되는 천연 동굴이 있는데 이 <원인동굴(猿人洞)>은 1929년 처음으로 고대 인류 유물이 발견된 후 부터 <주구점의 첫 번째 지점>으로 불리우고 있다.

주구점 유적지 지역은 중국 화북지역의 중요한 구석기시대 유적지로서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주구점의 첫 번째 지점인 <베이징인>의 유적지이다.

주구점의 유적지의 출토물에 근거하여 베이징원인은 대략 지금까지 70∼20만년전의 시기에 주구점 지역에서 거주했고 채집을 위주로 하고 사냥을 보조로 하는 생활을 했음이 증명되었다.

주구점 베이징인은 1987년 12월 《세계 유산목록》에 수록됐다.

 

 

* 담자사 潭柘寺

 "먼저 담자사가 있었고 후에 북경성이 생겼다"는 말이 있을정도로 담자사는 오랜 역사를 가진다.. 또 북경성과 자금성의 일부 건물은 담자사의 건물배치 풍격을 참고로 했다면 담자사가 역사적으로 차지하는 위상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담자사의 수건은 기원 316년 서진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가 바로 불교가 유주(고대 북경의 이름)에 들어온 초기이며 때문에 담자사는 북경지역에서 제일 먼저 세워진 불교사원으로 인정된다.

현재 탄저쓰에는 943칸의 방이 있으며, 그 중 고대 전당은 638칸으로 명, 청나라 시기의 풍모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베이징 교외에서 가장 큰 고대 사원 건축군이다. 모든 건축군은 중국 고대 미술 원칙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으며, 기본적으로 중심축을 따라 대칭을 이뤄 모든 건축물의 규격화된, 빈틈없는 느낌을 주고 있다. 중국 고대 건축물의 미학적 원칙을 따른 담자사는 중심선상에 주요한 건물을 배치하고 양쪽에 별채를 두어 서로 대칭되면서 엄밀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건물의 양식도 대궐과 누각, 정자, 제단 등 아주 다양하다.

담자사의 사찰외곽에는 또 상하탑원(上下塔院)과 동서관음동(東西觀音洞), 안락연수당(安樂延壽堂), 용담 등 명소들이 산재해 뭇 별이 달을 에워싼듯 사찰주변에 다양한 볼거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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