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뤄구샹 인근 골목, 마오얼 후퉁 (帽儿胡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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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얼 후퉁 (帽儿胡同)은 난뤄구샹 (南锣鼓巷) 골목 서측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난뤄구샹에서 시작해, 서쪽은 디안먼와이다제 (地安门外大街)까지다.  남쪽으로는 둥부좡챠오 후퉁(东不压桥胡同)과 통하며 북쪽으로는 더우자오 후퉁(豆角胡同)과 연결된다.

명대에는 쯔퉁먀오 원창궁후퉁(梓潼庙文昌宫胡同)이라 불렀는데, 원창궁(文昌宫)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청대에는 모자(帽,마오)를 만드는 공장이 들어서서 마오얼후퉁(帽儿胡同)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현재도 베이징 옛 주택의 풍모와 과거 귀족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청나라시기 다베이즈 푸(达贝子府), 마지막 황후 완룽 옛집 (婉容故居), 펑궈장 옛집(冯国璋故居) 등이 있다.

마오얼 후퉁 6호원은 다베이즈푸(达贝子府)로 청대 패자 다라이(达赉)의 옛 집이다. 다라이 패자는 건륭의 딸 허징 공주(和敬公主)의 후손으로, 1923년, 다라이는 허징공부 저택을 직노 연합군 총사령관 장종창 (张宗昌)에게 팔고, 자신은 마오얼 후퉁 6호로 이사를 갔다. 다라이 패자가 죽은 후에, 그 아들 둬러지 (多尔吉袭爵) 가 세습하였다가. 1940년 마오얼 후퉁에서 친라오 후퉁(秦老胡同) 18호로 이전하여 거주하였다. 현재는 개인 주택이 되었다.

골목의 13호원은 북양정부 총통 펑궈장(冯国璋)이 하야 후에 이곳에 머물렀으며, 1년 후에 이곳에서 병사했다.

신중국 후에 이곳은 조선 대사관 (朝鲜驻华大使馆)의 일부로 사용되기도 했고, 후에 다시 2001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 지금 13호 주택의 외관만 보면 당시의 기세는 느껴지지 않는다.

11호 가원(可园): 청조 대학자인 문욱(文煜)이 지었다.청나라 말기를 대표하는 개인 원림이었다.  건설 초기에 소주의  졸정원 (拙政园)과 사자림(狮子林)을 모방하여 지었으며, 원림은 비교적 작으나, 사람의 마음에 들어 가원 (可园)이라 이름 지었다. 비록 현재 이곳을 참관할 수는 없지만, 내부의 독특함을 상상할 수는 있다.

골목 35호, 37호원 주택은 마지막 황후 완룽(婉容)이 시집가기 전에 거주하던 원락이다. 37호원은 4진원락으로, 완용화원 (婉容花园)이라 적혀있다.

완용화원 옆의 주택 역시 그녀가 거주했던 곳이며, 현재 보통 민가 주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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