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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차 국가급 무형문화유산 대표성 항목: 八大处传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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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대처 공원(八大处公园)은 베이징 서산풍경구 남자락에 위치하며, 역사 유구하고, 문맥 풍부한 불교 사원 원림이자, 시내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현대 도시 산림 공원이다. 팔대처의 전설은 매우 특이하며, 올해 제5차 국가 비물질문화유산 대표성 항목 명단에 들었다.

경서 팔대처는 역사적으로 '삼산', '팔찰', '십이경'  (三山八剎十二景)으로 알려져 있다.

바다추 공원(八大处公园)은 서산에서 비교적 낮은 산맥인 추이웨이산(翠微山, 취미산), 핑포산(平坡山, 평파산), 루스산(卢师山, 로사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3개의 산이 마치 좌석같은 형태를 하고 있다. 8개의 고찰이 3개의 산에 촘촘히 분포되어 있으며, 자연적으로 형성된 “12경관”은 더욱 유명하다.


옛 사람들은 '3개의 산이 호화로운 집과 같고, 8개의 고찰은 집의 골동품과 같으며, 12개의 경관은 집 밖의 화원과 같다'고 칭찬했다. 

공원은 세간에서 보기 힘든 석가모니의 링야(灵牙, 영아) 사리가 보관되어 있어 대외적으로 유명한 2개의 링광쓰(灵光寺, 령광사)가 있으며, 최근에는 링광쓰 내부에 <반눠보뤄미둬(般诺波罗密多, 반낙파라밀다)> 심경벽, 500개의 나찰 조각과 포야(佛牙) 사리로 이루어진 불, 법, 사리로 형성된 불법승(佛法僧)이 한데 어우러져 원만한 느낌을 준다.





세상에는 겨우 두 개의 불아사리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곳에 있으며, 이는 많은 신비한 색채를 더하며 많은 전설을 남겼다. 그중에 '노사산 두 마리 청룡의 전설(卢师山大小青龙的传说)' 이 유명하다.


아주 오래전,  황하 용문에는 두 마리의 청룡이 숨어 있다가 이따금 요사스러운 기운을 내뿜어 백성들에게 해를 끼쳤다. 우 임금(大禹)이 용문에서 치수하였는데, 노하여 신삽으로 용의 보금자리를 제거하였으며, 두 마리 용은 적수가 되지 못해, 성난 채로 고해 유주로 도망을 가서 절벽 아래 용담에 숨어서 수련을 하였다. 후에  노사(卢师)가 이 산을 택해 거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크게 화가나서 그와 겨루기로 마음 먹었다.

한 저녁에, 하늘에 먹구름이 깔리더니, 비바람이 거세게 일어나고, 두 줄기의 빗줄기가 쏟아지면서 바로 절벽에 이르렀다. 노사는 잠시 잠을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깨어나 보니 온 몸이 흠뻑 젖어 있었으며, 고통스러웠다.  머리를 들어보니, 두 마리 용이 구름을 뿜어내고, 비를 부리고 있었다.

노사는 동사발을 하나 가져다가 주문을 외워 빗물을 사발 속에 모으더니, 다시 동사발에 입김을 세 번 불어넣자, 그 사발이 갑자기 하늘로 솟구쳐 올라, 용을 향해 날아갔다.  벼락 소리와 함께 사발이 깨지고, 두 용은 아픈 듯 고통스러워 하다가, 바로 연못 속으로 떨어졌다.

며칠 지나지 않아, 두 명의 동자가 노사를 찾아와 인사를 하고, 동자승이 되고자 한다고 땔감으로 밥을 지으며 노사를 모시니, 노사는 그 둘을 받아 들였다.

그러다 가뭄이 계속되고, 황제는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는 자를 모집하였고, 두 동자는 이에 응하여, 절 앞으로 나아가 청륭담에 뛰어들었으며, 청룡으로 변신한 후에 공중에서 운무를 뿌리고, 단비를 내리게 하여 가뭄을 해소시켰다.

원래  두 동자는 앞서 말한 두 마리 나쁜 용이었다. 불법에 감회되어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게 되었으며, 구름과 비가 되었다.

노사는 이에 황제로 부터 감응선사 (感应禅师)로 봉해졌으며, 또, 그가 거주하던 산을 노사산(卢师山)으로 봉하였고, 감응선사(感应禅寺) 사찰을 지어, 노사의 공덕을 표창하였다.

그 밖에도 팔대처의 전설은 민간에서 광범위하게 구전되어 왔으며, 현재 수집한 전설에는 "팔대처 초선탑의 전설(八大处招仙塔的传说)" , "팔대처 금어지 자희태후 물고기 감상 전설(八大处金鱼池慈禧赏鱼的传说)", "팔대처 관공 벽산인수의 전설(八大处关公劈山引水的传说)", "팔대처 판등구의 유래(八大处板凳沟的来历)" 등 30여 개가 있다.

1. 팔대처 전설, 관우 신이 산을 가르고 물을 끌어들이다. 关公劈山引水

옛날 옛말에, 팔대처는 단지 큰 산 하나였다고 전해진다.  산에는 나무가 많아서 풍경이 매우 아름다웠다. 어느 해, 어디선가 요사스런 용 두 마리가 산속에서 구름을 삼키고 안개를 토하며, 바람을 일으키고 파도를 만들었다. 요룡은 이곳을 독차지하기 위해 강속의 물을 다  마셔 말려버리고, 땅 속의 샘을 막았으며,  하늘의 구름도 흩어지게 했는데…결국 베이징 일대는 꼬박 3년 동안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이로인해  서산 일대의 백성들은 매우 고통스럽게 되었다. 마을들에선 비를 기원하며 신에게 빌었고, 집집마다 향을 피워 부처님께 빌고 했다. 물에 대한 바램은 정말 말할 나위 없이 간절했다. 살기 위해서 사람들은 몇 리, 심지어 몇 십 리까지 나가 물을 구했다.

이 일은 관우 신(关帝老爷)을  놀라게 했는데, 어느 날 밤, 관우 신은 청룡언월도를 들고 감쪽같이 서산에 와서, 두 마리의 요룡을 한 칼에 베어버렸으며, 두 마리의 요룡은 바로 끝장이 났다. 백성들을 놀라게 하지 않으려고, 관우 신은 어둔 달밤을 택해 산꼭대기에 올라가, 긴 수염을 쓸어내리며 사방을 둘러보니, 모든 샘구멍이 요룡의 몸으로 막혀 있었다.

관우 신이  청룡언월도를 들고 산을 향해 세 번을 내려쳤다. 곧,  큰 산 전체가 세 개의 도랑으로 갈라졌고, 세 개의 맑고 투명한 샘물이 세차게 솟아올라  세 도랑으로 흘러들어갔다. 이 모든 것을 유 씨 성을 가진 노인이 목격하고  " 관우 나리…"라 외쳤으며, 미쳐 말을 이어가기도 전에, 관우신은 네 번째 칼을 내리치고, 몸을 휙 내던지고 사라졌다. 유 씨 노인은 관우 신을 놀라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그 다음 날, 사람들은 산 속에 세 갈래 깊은 골짜기와 작은 골짜기 하나를 발견했으며, 네 갈래 물 줄기가 쉴새없이 흐르게 되어, 매우 기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떻게 이 큰 산에 하룻 밤 사이에 네 개의 골짜기가 생겨났을까가 의아스러웠다. 유 노인이 그가 본 건을 사람들에게 말하자, 사람들은 모두 관우 신은 좋은 신선이라, 가난한 사람을 구해준다고 여겼으며, 사람들은 곧 사당을 지어 그를 기념하기로 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관우 신이 서 있던 장소에 '관제묘( 关帝庙)'를 지었으며, 매년 명절이 되면, 가장 맛있는 음식을 가져와 공양하였다.


2. 팔대처 전설 :  판등구의 유래와 역사 板凳沟的来历

일찍이, 판등구(板凳沟, 걸상 골짜기) 일대의 산촌은 특히 가난했다. 옛날에 진 씨 가족이 있었는데, 이 산골에서 온 종일 힘들게 일하며 초가집 두 채를 짓고 황무지를 개간했다. 어느 한해에 수확이 매우 좋아, 진씨네는 아들을 장가보내려고 했다.

진씨가 생각하기를, 일 가족이 산서성에서 겨우 빠져나와, 어렵게 어렵게 고생하며, 일가를 이루고, 이제 아들을  장가 보내려 하니, 반드시 체면을 세우고, 고향 사람들을 초청하여 술을 대접하며, 시글벅쩍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찌는 술상을 차리려 하자 걱정이 생겼다. 채소는 집에서 재배한 것이고, 닭과 오리는 집에서 기른 것이고, 술도 집에서 담근 것인데, 그 연회 상은 어디서 준비할지를 몰랐다.  초청한 손님들을 그냥 서서 술 마시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  이때, 진 씨 아내는 진 씨가  하루 종일 근심걱정에 잠겨 있는 것을 보고,  "우리 이 산의 신령에게 빌어봅시다. 혹시 신령이 나타날지도 모르지요"라고 말했다.진 씨도 방법도 없고 마음이 급하니, 결국 운에 맡길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글씨 쓰는 이에 부탁하여, 혼사를 치르려면 연회상 의자(板凳)가 필요한데, 돈이 없어 산신령이 도와주십사하는 소원을 적었으며,  산 동굴 입구에 소원문을 붙이고, 향을 피워 기도한 후에 집으로 돌아갔다.

셋째 날 아침, 동굴 입구에 도착한 진 씨의  눈 앞에는 놀라운 광경이 있었다. 정교한 의자들이 동굴 입구에 놓여있었으며, 그는 자신도 모르게 무릅을 꿇고 취미산을 향해 절을 하며, 산신령의 영험함이라 믿었다.

정말로 신령의 도움일까? 사실, 그날 길을 지나던 두 사람이 비를 피해 때마침 동굴에 들어갔으며, 동굴 입구에 붙은 진씨의 소원문을 보고, 이곳의 가난한 사람을 위해 힘을 보태기로 결정했다. 원래, 이 두 사람은 노반(鲁班)의 후손으로, 선조를 따라 좋은 일을 하겠다고 생각하여, 소원문을 떼어낸 후에, 비가 그친 후 하산하여 정교한 걸상을 만들고 나서 다시 동굴에 가져다 놓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진씨 네는 경사를 치르며, 이 걸상을 매우 소중히 여기며, 다 쓰고 난 후에, 바로 산 동굴로 돌려놓았다.

나중에, 마을에서는 어느 집이든 경조사를 치를 때면, 진 씨네 처럼 소원문을 적었으며, 이틀 후에 동굴에 가서 필요한 만큼 가져다 쓰고, 다 쓴 후에는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는 것이 일종의 불문률이 되었다. 후에, 사람들은 이 장소를 기념하기 위하여, 판등구(板凳沟)라 이름 지었으며,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판등구의 이름은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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