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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차 국가급 무형문화유산 대표성 항목: 천단 신악서 중화소악 天坛神乐署中和韶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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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무원에서 '제5차 국가급 비물질문화유산 대표성 항목 명단'을 발표하였으며, 천단 신악서 중화소악 (天坛神乐署中和韶乐)이  명단에 포함되었다.


천단 신악서 중화소악(天坛神乐署中和韶乐)은 중국 고대 아악에서 기원하며, 교묘악(郊庙乐)이라고도 부른다. 일종의 예, 악, 가, 무(礼、乐、歌、舞)를 융합해 일체화 한 예식 음악이며, 명나라 홍무년간에 '중화소악(中和韶乐)'이라 이름지어졌다. 이는 명 청시기에 제사, 조회 및 연회 활등 등에 사용한 음악이며, 중국 고대 가장 전형적인 의미를 가진 궁중 움악이다.



(고대 제천 악대가 사용한 북)

오천년 역사 문명을 가진 예의 지국으로 중국의 예악 문화는 역사가 유구하며, 그 영향도 깊다. <예기 악기 (礼记·乐记)> 중에는 '예와 악을 천지의 질서와 조화 (乐者,天地之和也;礼者,天地之序也。和故百物皆化,序故群物皆别)' 라 하였다.

서주 개국 초기, 주 무공은 명을 내려  '예법을 정하고 악률을 제정(制礼作乐)' 하게 하였으며, 각종 귀족 생활 중에서 예의와 예식 음악을 통하여 음악을 왕권 통치에 복무하게 하였다.

아악 (雅乐)의 체계는 서주 초기에 제정되었으며, 법률, 예의와 함께 귀족 통치의 기반으로 삼았으며, 중화제일악장이라 불리는 '중화소악'은 그 기원이 3천여 년 전의 서주 아악이 되는 셈이다.

문헌 기록에 따르면, 3천여 년전의 서주에는 '육대육악(六代大乐)'이라 불리는 궁궐 음악이 있었으며, 이 육대육악에는 6개 악무 (云门、咸池、大韶、大夏、大濩、大武)가 포함되는데, 이는 각각 6개 시대(黄帝、尧、舜、禹、商、周)에 창작된 것이라 하며, 당시 국가 최고 제사 활동 중에 사용한 전형 악무로, 이러한 의식성을 매우 강한 전통 궁궐 음악을 '아악'이라 불렀다.

아악은 주로 제왕의 조정 하례, 천지 제사 등 대형 예식에서 사용되었다. 공연은 매우 정연하게 이루어졌으며, 예악가무를 융합 일체로 하여, 현장에 일종의 엄숙함과 웅장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어, 사람들의 천지, 신명, 선조에 대한 경외를 표현하였다.


(고대 제천 악대가 사용한 훈)

명나라 초기, 태조 주원장은 '아악'을 재편하고 '중화소악'이라 개명했으며, 청나라 시기에도 계속 이어 내려왔다.

옛 사람들은 '중화'는 유가 도덕 수양의 준칙이자, 만물화합의 표준이라 여겼으며,'아악'의 풍격은 치우치지 않는 온화로움에 있다고 여겼다.  '소악'은 역사에서 순악(舜乐)으로 불리며, 그 기원은 5천여 년 전으로, 상고시기 '순제의 음악'으로, 일종의 시, 악, 무를 모은 종합성 고전 예술이다. 중국의 고대 한어 중에, '소(韶)'는 '아름다운'의 뜻을 가지며, 아름다운 음악이 바로 '소악(韶乐)'인 셈이다.

중화소악은 중국 고대 가장 전형적인 의미의 전통 궁궐음악이며, 명청 시기에 제사, 조례, 연회 등에서 빠질수 없는 황실 음악이었으며, 더욱이 유가 예악문화 체계의 집대성이다. 그 연주 악기는 16종 ( 编钟、搏钟、编磬、特磬、柷、敔、建鼓、搏拊、笛、篪、箫、排箫、埙、笙、琴、瑟)의 악기 를 포함하는데, 전체 악기는 8종의 재료(金、石、土、木、丝、革、匏、竹)로 제작되어,  팔음을 모두 갖추어, 고대 유가의 '대악과 천지의 조화'라는 예약 사상에도 부합한다.

수천년 간, 역대 중앙 정부에서는 모두 전문 부서를 두어 음악 업무를 관장하게 했다. 그중 신악서(神乐署)는 명청 시기 황실 제천 대전 악무를 담당한 기구였다. 신악서는 베이징 천단 서문 남측에 위치하며, 명 영락 16년 (1420)에 건설되었고,  기곡전, 환구단, 재궁, 희생소와 함께 천단의  5대 건축을 이룬다.

신악서는제천 의식의 고악 연주를 관리하던 기관으로, 제사 악무 인원을 전문으로 배양했다. 명나라 시기 신악서의 악무관, 무생은 모두 도사(道士)가 담당하였으며, 이로인해 신악서는 신악관(神乐观)이라 불리기고 했다. 청 건륭8년 (1743)에 신악관은 신악소(神乐所)로 개명되었으며, 건륭 20년 (1755)에는 다시 신악서(神乐署)로 개명되었다.

명청 시기 황실의 촤고 악무 학부로서, 신악서에는 전문기구와 전문인원들 두어 제천 악무 인원에 대한 배양과 훈련을 했으며, 한창때에 악무생 인원이 3000여 명에 달하기도 했다. 명조 이후에 중화소악은 태상사(太常寺)가 담당하였고, 연주은 천단 신악서에서 했다.

이렇듯, 천단 신악서 중화소악은 명청 시기의 제사, 조정 하례, 연회 등의 전용 음악이었으며, 중국 고대 역대 통치자에게 모두 중용되었다. 청 순치 원년에는 천지 제사, 태묘 제사, 사직단 제사에서 모두 중화소악을 사용하도록 정하였다. 건륭 시기까지 중화소악은 줄곧 각종 대조례와 제사 활동에서 사용되었다.

 1900년에 이르러, 신악서의 운명은 전환을 맞는다. 팔국 연합군의 베이징 침공시에 신악서가 공격받고, 인원은 쫒겨나고 악기와 악보는 파손되었다. 민국시기와 일본군 침략 기간에 신악서는 여러차례 파괴를 당하고 쇠퇴하게 되었으며, 중화소악은 소실되었다.

고대 아악을 다시 찾기 위해, 국가는 대량의 자금과 인원을 투입하여 , 전통의 우수 고대 음악을 회복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였다.

1998년 12월, 천단이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2002년 2월, 신악사의 보수 공사가 시작되었다. 2006년 1월 초하루에 신악서 중화 소악이 대중에 처음 전시 공개되었다. 같은 해 12월 31일, 천단 신악서 중화소악이 베이징시 비물질 문화유산으로 공포되었다. 2012년 천단 공원은 신악서 아악중심을 설립하였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중화소악이, 약 100년 만에 다시금 재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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