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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공원 영안교(北海公园 永安桥)의 석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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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공원 (北海公园)남문으로 들어서면, 단성(团城) 북측 영안교(永安桥)는 백탑이 있는 경화도(琼华岛)를 연결하고 있다.  영안교 다리의  양 끝에는 사주삼루식 패루(牌楼)가 하나씩 있으며, 남쪽 패루는 "적취 积翠"라 부르고, 북쪽 패루는 "퇴운 堆云"라 한다. 


각 패루 아래에는 석사자 한 쌍이 있으며, 다리 남쪽의 석사자는 남향이고, 다리 북쪽의 석사자는 북향으로 앉아 있는데, 이는 천안문 앞 금수교 (金水桥) 석사자 두 쌍이 모두 남쪽을 향하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먼저 영안교 남측의 석사자에 대해 보면, 석사자의 체격은 큼직하고, 석질은 옅은 반점 무늬가 있고, 석기좌은 겨우 1층으로 비교적 낮다. 전신 근육이 돌출된 부분은 자연풍화로 침식이 심하게 되었으며, 일부 지방은 보수된 흔적이 있다. 석사자의 목을 들고 머리를 살짝내리고 있으며, 입을 벌린채 고함치는 듯하고,  두 눈은 낮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가슴 앞에는 넓은 비단 띠 무늬가 목을 감싸고, 중간에 수레방울이 걸려있으며, 양측에는 술이 걸려있고 등에는 길상 매들이 있고,  발톱 관절은 큼직하다. 자세는 우람하며, 태도는 마치 잘 길들여진 사자처럼 친절하게 보여 사나운 맹수의 느낌은 없다.


이 한 쌍의 사자의 형태는 천안문 앞 명대 석사자의 흡사하며, 자연 풍화의 정도로 보아 명나라 시기에 만들어 진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다리 북쪽의 석사자에 대해 보면, 이 사자의 위치는 다리 북단이며, 머리는 북쪽을 향하여, 영안사(永安寺) 의 입구문을 바로보고 있다. 사원 문앞에 사자가 사원문을 바라보며  설치된 경우는 거의 없기에, 베이징에서는 "영안사의 사자는 북쪽을 향하지(永安寺的狮子——头朝北)" 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상식적이지 않고 지나치게 이기적인 사람을 비꼴 때 쓰기도 했다.


일반적인 관례에 따르면, 궁전, 도관, 사원, 저택 문앞에 설치하는 석사자 한 쌍은  문 좌우측에 하나씩 설치되고, 외부를 향하여 앉아 문을 지키는 형태를 갖는다. 그런 면에서 이 석사자들은 통례와는 상반되는데, 어떤 사람은 이를 두고 백탑의 사나운 기운이 강하여 이를 진압하기 위함이라고도 말한다. <베이징 명원 취담>에서는 이 석사자가 영안사의 수문 사자로 보이나 실제로는 영안사에 속한 것이 아니고, 영안교에 속한 것이며, 다리와 패루와 함께 일체화 된 장식물이라고 적혀 있다.


실제 상황을 보면, 영안교 양 끝의 석사자 두 쌍은 그 조형, 석질, 조각공예, 자연풍화 정도가 서로 다르며, 같은 시기에 조각된 것으로 보기에는 어렵다.




다리 남쪽의 석사자 조각공예는 비교적 투박하고 기세가 웅장한 것이 명대에 조각된 것으로 보이고, 다리 북쪽의 석사자는 조각 수법이 세밀하고 기좌도 2층 구조이며, 체격도 남쪽의 석자자에 비해 많이 작다. 사자 머리의 조형도 다르고, 다리와 가슴쪽의 문양과 조형 수법도 차이가 있으며, 북쪽 사자상은 청나라 석사자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 기좌 위의 문양 도안이 뚜렷하고 장식성도 더욱 강하며, 자연풍화도 덜한 것이 당연히 청나라의 석각품으로 봐야 하며, 다리 북쪽의 청대 석사자가 다리 남쪽의 명대 석사자보다는 100년 이상이 차이가 날 것이다.



과거 돌다리 양 끝단에 석사자를 설치했다면, 당연히 같은 시기에 조각된 같은 모양의 것이어야 한다.

명대 만들어 진 천안문 금수교의 돌사자는 다리 양 단의 석사자 두 쌍이 모두 같은 모습이며, 머리는 모두 남쪽을 향하고 있다.


북해 영안교의 이 돌사자 두 쌍은  형태도 여러 곳이 다르고, 그 위치도 변경되었기에, 두 쌍을 동일시 할 수는 없다. 영안교 북쪽의 석사자는 청나라 시기 조각품이며, 아마 백탑 영안사과 관련이 있으며, 그 위치도 옮겨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청 순치 8년 (1651)에 이곳에 백탑과 사원을 건설하였으며, 백탑사라 이름지었다. 건륭 8년(1743)에 사원을 보수 증축하고 영안사로 개명했는데, 이때에 문앞에 석사자 한 쌍을 추가했을 수도 있다. 또 그후에 산문을 보수하거나 패루를 건설하면서 석사자의 위치가 바뀌어 지금에 이르렀을 수도 있다.




한 쌍의 석사자는 본래 건축의 문 앞을 지키며  악귀를 쫒고 액막이를 하는 것인데, 사원 문 앞의 석사자 방향이 확실히 전통 건축의  규격에는 위배된다,  어쩌면 그 방향을 반대로 돌려 남쪽을 향하게 하고 위치도 산문 앞으로 옮겨 놓는 것이 제 자리일지도 모른다.



원문 저자  梁欣立. 

번역 편집 김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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