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공원 사직단 돌사자, 하북에서 옮겨 온 송대 유물

2020-03-24

중산공원 사직단(中山公园社稷坛) 남문 바깥 좌우에는 돌사자가 있다.  조형은 소박한 편이나 그 기세는 등등하다. 가슴을 내밀고 머리는 들고 고개는 살짝 기울어져 있으며, 입을 벌린 채  으르렁 거리는 듯하며 ,  앞다리에는 돌기 조형으로 되어 있다.

이 돌사자의 조각 수법은 특이하여 일반적으로 등을 구부린 채 앉아 있는 명청시기 돌사자와는 다소 다른 점이 있다. 그 형태가 다른 점을 보면,  가슴 앞에 걸린 세개의 술(穗)은 끈을 묵어 만든 조형이며, 앞다리는 가늘고 긴 편인데 다리 앞부에는 돌기 덩어리들이 줄지어 형성되어 있고, 다리 뒷면은 털갈기 조형이  줄지어 형성되어 있다.

이 한 쌍의 돌사자는 원래 이곳의 물건이 아니었다. 400여 Km 떨어진 하북성 대명현(大名县 大名府)에서 옮겨온 것이다. 이는 던 왕회경(王怀庆, 1875─1953年 민국시기 북양장군의 하나)이 일찍이 대면부진수사에 부임했엇는데, 당시에 순찰 중에 무너진 오랜 사찰에서 석불을 발견하고, 가져갔다.

1918년 2월, 북양정부는 왕회경에게 직리 군무를 돕고, 총통부 고급고문으로 임명하였으며, 왕회경이 베이징으로 오면서 석사자를 함께 옮겨왔다. 당시 중앙공원(현 중산공원)이 성립된지 얼마 안되었으며, 그는 이제 막 대외개방한 중앙공원 사직단 남문 바깥에 석사자를 안치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석사자의 조각 문양 자연풍화정도를 보면, 당나라 시기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북송 인종2년(1042), 대명부 지역은 상업이 비교적 발달했으며, 석사자 역시 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석사자의 형태는 비교적 절강지역의 옛 석사자 모습과 비슷하며, 잠정적으로 송나라 유물로 판단하고 있다.

(번역김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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