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서릉 개방 관광지 : 숭릉 崇陵

2020-03-25

청서릉 숭릉 (清西陵 崇陵)은 광서황제(光绪皇帝)의 능묘로, 1909년에서 1915년에 건설되었다. 중국 최후의 봉건제왕의 능묘로, 광서황제와 효정경황후 (孝定景皇后, 隆裕太后)가 묻혔다.

광서황제, 이름은 재첨(载湉), 재위기간은 34년(1875年-1908年)이다. 재위기간 중, 무술변법(戊戌变法)을 실행했으나. 겨우 103일 만에 자희태후로 부터 폐지되었으며, 그후에 곧 연금되었다.

1908년 11월, 38세의 광서는 자희 태후보다 하루 앞서 죽었는데, 둘의 생전 모순이 격렬한 탓에 그 사인은 여러 추측이 난무했다. 2003년 부터, 관련 전문기구에서 광서의 머리카락과 직물 등에 대한 검증 연구를을 했으며, 2008년에 광서제의 사인은 비상중독이라 발표했다.

광서는 생전에 릉을 건설하지 않았으며, 선통황제(宣统皇帝)가 등극 후에 서릉에 숭릉을 건설했다. 1912년, 선통이 퇴우히고, 민국정부가 출자하여 숭릉 건설을 지속하였으며, 숭릉이 조대를 뛰어넘은 공사가 되었다.

숭릉은 건축 규모상에서 태릉만 못하나, 현대 건축 기술의 정화를 도입하여서 특색이 선명하다.

주체 공정 목재는 귀한 녹나무를 사용했는데,  그 재질이 단단함은 마치 동이나 철 같다하여, 동량철주(铜梁铁柱)라 불린다.  배후와 통풍시설을 잘 갖추었다. 식목 수종에는 진귀한 은송과 나한송을 사용해 심었다.

1938년, 숭릉 지궁이 도굴되었으며, 1980년에 정식으로 대외개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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