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황릉과 명 13릉 : 명나라 황제 16명의 능침은 어디

2020-03-03

역대 황제들은 사후에도 거대한 능묘에 묻혔다. 특히 명나라의 13릉은 세계적으로도 규모가 크고, 제후 능묘가 가장 많이 모여있는 황릉 건축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베이징을 대표하는 주요 관광지의 하나다. 

다만, 명 왕조가 개국황제인 홍무제 주원장 (洪武皇帝 朱元璋) 부터 마지막 황제 숭정제 (明思宗崇祯皇帝) 까지 17대에 걸쳐 총 16명의 황제가 있는데, 왜 명나라 황제릉은 명13릉 (明十三陵) 일까? 

* 명13릉에 황제릉이 없는 황제 3명은 누구일까?

답을 말하자면, 개국황제인 주원장 (朱元璋), 건문제 주윤문(建文帝朱允炆), 경태제 주기옥(景泰帝朱祁钰)의 능묘가 13릉 지구에 포함되지 않는다.

1. 먼저, 홍무황제 (洪武皇帝) 명 태조 주원장 (明太祖朱元璋1328年10月21日-1398年6月24日)은 원나라를 무너뜨리고, 대명 왕조를 건립했다. 그는 남방에서 부터 북방을 공격하여 최후에 전국을 통일하였다. 따라서 건국 후에 남경(南京)을 도읍으로 정했다.

홍무 40년부터 주원장은 명 효릉(明孝陵) 건설을 시작했으며, 25년에 걸쳐 10만 인부를 동원하여 건설하였다.

명 효릉의 대지면적은 170여 만 평방미터로, 중국 최대의 제왕 침릉의 하나다. 당시 명조는 아직 베이징으로 천도하기 전이었으며, 주원장의 묘는 남경 명효릉(南京明孝陵)이 되었다.

2. 두 번째는 명 혜종 건문제 주윤문 (明惠宗 建文帝 朱允炆, 1377年12月5日—? ) 으로, 건문제의 묘는 없다.

건문제 주윤문은 태조 주원장의 손자이나, 태자 주표(朱标)가 죽고 나서, 주원장은 황위를 주윤문에게 주었다. 건문제는 즉위 후에 친왕들을 제거하는 등 중앙 황권을 강화하고자 했으나, 결국 정난의 변 (靖难之役)으로 인해 연왕 주체 (朱棣, 주원장 4째아들)에게 남경 성을 함락당했다. 이때 주윤문의 생사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능묘도 없었다.

3. 세 번째는 명 대종 경태제 주기옥(明代宗 景泰帝 朱祁钰 1428年9月11日—1457年3月23日)으로, 경태제의 묘는 명13릉이 아닌 베이징 서산 지구에 있다.

주기옥은 명 영종 주기진(明英宗朱祁镇)의 동생이며, 명 선종 주첨기(明宣宗朱瞻基)의 차남이다.

정통 40년에, 명 영종이 몽골 정벌을 나섰다가 오히려  오이랏의 포로가 된 토목보의 변(土木堡之变)이 발생했으며,  오이랏은 황제를 포로로 명나라를 협박했다. 당시 조정에서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주기옥을 경태제로 등극시켰다. 다만 이후  영종 주기진 돌아왔으며,  후에 경태제가 병이 위중한 틈에 영종이 탈문의 변(夺门之变)을 통하여 복위했다.  명 영종이 복위한 후에 주기옥의 정통성을 인정치 않아, 주기옥은 친왕 신분으로 베이징 서산 경태릉(景泰陵)에 묻혔다.

* 명13릉에 있는 13명의 황제릉은? 

1、 명 장릉 (明长陵, 朱棣)

명 장릉은 명조 제3위 황제 성조문 황제 주체 ( 成祖文皇帝朱棣, 永乐) 와 황후 서씨(徐氏)의 합장 능침이다.

명 성조 주체 (明成祖朱棣, 1360年5月2日-1424年8月12日) 는 명 태조(明太祖)의 네 째 아들이며, 명조의 세 번째 황제다, 연호는 영락 (永乐)이다.

2、명 정릉 ( 明定陵, 朱翊钧)

명 정릉은 명조 제13위 황제 신종현 황제 주익균(神宗显皇帝朱翊钧 , 万历)의 능묘다. 두 명의 황후가 함께 묻혔다.

명 신종 주익균 (明神宗朱翊钧, 1563年9月4日-1620年8月18日)은 명조 13번 째 황제이며, 명 목종 주재후(明穆宗朱载垕)의 세째 아들이다.  

융경 6년 (1572), 명 목종이 죽고, 10세의 주익균이 즉위하였으며 연호는 만력 (万历), 재위기간이 48년으로 명조 재위기간이 가장 긴 황제였다. 

3、 명 소릉 (明昭陵, 朱载垕)

명 소릉은 명조 제12위 황제 목종장 황제 주재후(穆宗庄皇帝朱载垕, 隆庆) 및 그 황후 2명의 합장능침이다.

명 목종 주재후 ( 明穆宗朱载垕,朱载坖, 1537年3月4日-1572年7月5日)는 명 세종 주후총(明世宗朱厚熜) 의  세째 아들이다.  연호는 융경(隆庆)이다.

4、  명 영릉 (明永陵, 朱厚熜)

명 영릉은 명 세종 주후총(明世宗朱厚熜,  嘉靖) 및 3명의 황후 (陈氏、方氏、杜氏)의 합장 능침이다.

명 세종 주후총 (明世宗朱厚熜, 1507年9月16日-1567年1月23日) 은 명 헌종(明宪宗)의 손자이자, 명 효종(明孝宗)의 조카이며, 흥헌왕 주우원 (兴献王朱祐杬)의 아들,  명 무종(明武宗)의 사촌 동생이다.

명조 제 11위 황제로, 정덕16년 (1521年)부터 가정 45년(1566)까지 재위했다. 연호는 가정(嘉靖)이다.

5、 명 헌릉 (明献陵,  朱高炽)

명 헌릉은 명조 제4위 황제 인종소  황제 주고치 (仁宗昭皇帝朱高炽,  洪熙) 및 황후 장씨(张氏)으 능침이다.

명 인종 주고치 (明仁宗朱高炽, 1378年8月16日-1425年5月29日)는 명조 4번 째 황제로, 명 성조 주체(明成祖朱棣)의 장자다.

영락 22년(1424年) 9월 부터 홍희원년 (1425年) 5월까지 재위했으며, 연호는 홍희(洪熙)다.

6、 명 경릉 ( 明庆陵,  朱常洛)

명 경릉은 명조 제 14위 황제 광종정 황제 주상락 ( 光宗贞皇帝朱常洛, 泰昌)  및  황후 3명(郭氏、王氏、刘氏)의 합장 능침이다.

명 광종 주상락 (明光宗朱常洛, 1582年8月28日―1620年9月26日)은 겨우 한 달간 재위했다.

명 신종 주익균 (明神宗朱翊钧)의 첩 장자다. 연호는 태창(泰昌)이다.

7、 명 무릉 ( 明茂陵,  朱见深)

명 무릉은 명조 제 8위 황제 헌종순 황제 주견심(宪宗纯皇帝朱见深,  成化) 과 황후 3인 (王氏、纪氏、邵氏)의 합장 능침이다.

주견심 (朱见深, 1447年12月9日—1487年9月9日),  즉 명 헌종(明宪宗)은  후에 이름을 주견유(朱见濡)로 개명하기도 했다. 명 영종 주기진(明英宗朱祁镇)의 장자이며, 연호는 성화(成化)이다.

8、 명 강릉 (明康陵,  朱厚照)

명 강릉은 명조 제10위 황제 무종의 황제 주후조(武宗毅皇帝朱厚照,  正德)와 황후 하씨 (夏氏)의 합장 능침이다.

명 무종 주후조 ( 明武宗 朱厚照 1491年10月27日-1521年4月20日) 는 명 효종 주우탱 (明孝宗朱祐樘)와 장황후(张皇后)의 장자로, 연호는 정덕(正德)이다.

9、 명 경릉 ( 明景陵,  朱瞻基)

명 경릉은 명조 제 5위 황제 선종장 황제 주첨기 ( 宣宗章皇帝朱瞻基, 宣德) 및 황후 손씨(孙氏)의 합장 능침이다.

명 선종 주첨기 ( 明宣宗朱瞻基, 1398年 또는 1399年2月9日-1435年1月31日)는 명 인종 주고치(明仁宗朱高炽)와 성효소 황후 장씨의 장자로 연호는 선덕(宣德)이다.

10、 명 태릉 ( 明泰陵,  朱祐樘)

명 태릉은 명조 제9위 황제 효종경 황제 주우탱 (孝宗敬皇帝朱祐樘,  弘治) 및 황후 장씨(张氏)의 합장 능침이다.

명 효종 주우탱 (明孝宗 朱祐樘, 1470年7月30日―1505年6月8日) 은 명 헌종 주견심(明宪宗朱见深)의 3째 아들이며, 연호는 홍치(弘治)다.

11、  명 덕릉 (明德陵,  朱由校)

명 덕릉은 명조 제15위 황제  희종접 황제 주우교(熹宗折皇帝朱由校,  天启)와 황후 장씨(张氏)의 합장 능침이다.

명 희종 주우교 (明熹宗朱由校,  1605年12月23日-1627年9月19日)는 명 광종 주상락 (明光宗朱常洛)의 장자다.

16세에 즉위하여 7년 간 재위했다. 연호는 천계(天启)다.

12、 명 유릉 ( 明裕陵,  朱祁镇)

명 유릉은 명조 제 6위 황제 영종 주기진(英宗朱祁镇)과 황후 2인 (钱氏、周氏)의 합장 능침이다.

명 영종 주기진(1427年11月29日—1464年2月23日)은 명조 제 6번째 황제(正统 1435—1449年)이며,  황제 복위를 한 8번 째 황제(天顺 1457—1464年)이기도 하다.

정통 14년 (1449) 8월에 토목보의 변 (土木堡之变)으로 몽골 오이랏 (瓦剌)에게 포로가 되었으며, 명 조정은 그 동생 주기옥 (朱祁钰)으로 황위를 이었다. 다만 주기진이  곧 돌아왔으며, 후에 경태 7년 (1456)에  주기진은 탈문의 변 (夺门之变)을 통하여, 제위를 되찾았으며, 연호를 천순(天顺)으로 고쳤다.

명 선종 주첨기 (明宣宗朱瞻基)의 장자이며,   연호는 최초 재위기간에는 정통(正统), 복위 후에는 천순 (天顺)이다.

13、  명 사릉 (明思陵,  朱由检)

명 사릉은  명조 마지막 제 16위 황제  명 사종 주유검(明思宗朱由检)과 주황후 (周皇后) 및 전귀비(田贵妃)의 합장릉이다.

1642년에 건설을 시작했으며, 본래  명 사종의 총애 후궁 전귀비(田贵妃)의  묘(妃园寝) 였다. 명이 멸망한 후에 이자성(李自成)이 명을 내려 명 사종 및 황후 주씨를 전귀비의 묘에 함께 묻게 하였으며, 명칭도 사릉(思陵)으로 바꾸게 하였다. 이러하여 사릉은 명 13릉 중에서 유일한 황제, 황후, 귀비가 함께 묻힌 능이 되었으며, 그 규모도 다른 황릉에 비해 작다.

명 사종 주유검(明思宗朱由检,  1611年2月6日—1644年4月25日)은 명 광종 주상락(明光宗朱常洛)의 5째 아들이다.  

묘호는 사종(思宗)이었으나 후에 의종(毅宗)으로 바뀌었다. 연호는 숭정(崇祯)이다. 

(번역편집 아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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