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후광회관 이야기

2020-10-02

베이징 호광회관 北京湖广会馆

연령 :212세

특징 : 매란방 (梅兰芳), 담흠배(谭鑫培) 등 유명인사가 이곳에서 섰다.

명청시기, 과거제도의 발전에 따라 베이징의 회관문화도 함께 흥성했다. 그중에서 후광 회관(湖广会馆)을 빼 놓을 수 없는데, 이곳은 현재도 베이징에 존재하는 무대(戏楼)를 갖추고 있는 유명 회관의 하나다. 호광(湖广)은 과거에 호북,호남 지역을 통칭하는 말로, 회관 건립 초기에는 주로 호남 호북에서 베이징에 시험을 보러 오는 이들이 묵던 곳이었다.

베이징 후광 회관은 호방교(虎坊桥) 서남모퉁이네 자리한다. 회관 정문 기둥에는 '베이징 희곡 박물관 (北京戏曲博物馆)'이 써 있고, 다른 기둥에는 '베이징 호광회관 대희루(北京湖广会馆大戏楼)'글자가 적혀있다.

정문을 들어서면, 좌측에 희루(戏楼) 극장이, 우측에는 다루(茶楼) 찻집이 있으며, 다루 앞쪽의 월량문(月亮门)을 넘어서면 곧 중원 뜰이 나온다. 뜰에는 꽃과 나무, 대나무가 꾸며져 있다. 원 내 2층 건물의 1층은 원래 향현사(乡贤祠) 였으며, 현재는 베이징 희곡박물관으로 되었다. 2층은 문창각(文昌阁)이다. 건물 앞쪽에 자우정(子午井)이라 불리는 우물이 하나 있다.

기효람(纪晓岚)은 <열미초당필기 阅微草堂笔记>에서 이 우물의 기묘함을 기술하였는데, "자오2시에 단 맛이 나고, 다른 시간에는 그렇지 않다"고 하였으며, 이에 '자오정(子午井)'이라 이름지어졌다 한다.

베이징희곡박물관 내에는 회관의 역사회고전이 있으며, 이곳 원락의 깊은 역사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회관은 청 가경년간에 지어졌으며, 후에 희루(戏楼)를 증설했다.

건륭 년간에 이곳에서 감찰어사 장유인(张惟寅), 체인각 대학사 류권지(刘权之) , 동각대학사 왕걸(王杰), 문학가 기효람(纪晓岚)) 등이 거주했으며, 장유인은 바로 청말기 대신 장지동(张之洞)의 할아버지다.

도광 29년 (1849)에 증국번(曾国藩) 주관으로 호광회관의 재건축이 있었으며, 이때 회관의 기초 구조가 확정되었으며, 풍우회인관(风雨怀人馆)도 증설하였다.

1912년 8월 25일 당일, 손중산(孙中山)이 두 차례 호광회관을 방문하였는데, 오전에는 동맹회 환영회에 참석하기 위함이었고, 오후에는 국민당 성립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양계초(梁启超), 마인초(马寅初)도 일찍이 이곳에서 연설을 한 적이 있다.

회관 건립 초기에 매년 정월에 단체 신년행사를 하며, 고향사람들간 안부를 나누었는데, 관료 부호들이 모이고, 배우를 초청하여 희루에서 공연을 열었다.

청나라 말기 민국초기에 담흠배(谭鑫培), 여숙암(余叔岩), 진덕림(陈德霖), 매란방(梅兰芳) 등 4대 명 배우들이 모두 이곳 무대에 올라 공연을 하였다.

대희루 건축은 회관이 1830년에 재건축을 할 때 추가 건설된 것으로, 아름다운 중처마 누각이며, 세계 10대 목질극장의 하나로도 평가를 받았다.

현재 대희루에서는 이미 공연행사가 회복되어 열리고 있으며, 덕운사(德云社)가 이곳에서 공연을 하며, 일부 희곡 공연도 열린다.  그런 탓에 회관 참관시에도 대희루의 공연 소리를 듣게 된다.

희곡박물관 내에는 적지 않은 희곡관련 옛 물건이 전시되고 있으며, 목계영(穆桂英) 여장군이 착용하던 칠성액자, 경극 공연예술가 이홍춘(李洪春) 선생이 관우 역을 할때 사용한 큰 칼 등을 볼 수 있다.

주소 西城区虎坊路3号,지하철 7호선 虎坊桥 서남출구

개방시간 9:00 -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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