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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베이징의 중추절 풍습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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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추절(中秋节)은 음력으로 8월 15일이며, 이날은 삼추(三秋)의 가운데라 중추(中秋)라고 부른다.

중추절은 또한 중추절(仲秋节)、 단원절 (团圆节)、 과자절(果子节)、 여아절(女儿节, 시집간 딸이 16일에 친정에 오는 날)이라고도 하며, 옛 베이징에서는 팔월절(八月节)、토채절 (讨债节, 옛 베이징에는 3대 명절에 채무를 청산하였다)、경로절( 敬老节, 과거 조정에서는 이날 60세이상 노인에게 지팡이와 의자를 선물하는 규정이 있었다)라고도 불렀으며, 아이들은 월병절(月饼节)이라 부르기도 했다.



중추절은 과거 한나라 시기에 이미 형태가 갖추어졌으나 당시에는 8월 15일이 아니고 입추날이었다. 당나라 시기에 이르러, 시를 읊고 달감상하는 활동이 생겼다. 송나라에 이르러서는 중추절이 현재처럼 8월 15일로 규정되었다.

* 달 제사 지내기

이때는 마침 과일들이 익어가는 시기로 북방에서는 사과, 감, 배, 대추, 홍백해당 등이 팔릴 때다.

이날 아침 사람들은 먼저 제사용 과일을 준비하며, 배를 빼고 어떤 과일도 사용할 수 있었다. 또한 연꽃잎 모양으로 자른 수박이 있어야 했다.


제사용 월병의 경우는 반드시 붉은 색 재료와 관계되어야 하며, 백색은 사용할 수 없었는데, 홍색 재료는 참기름으로 만든 것이고, 백색은 돼지 기름으로 만든 것이다.


이날 저녁, 부잣집에서는 집안 뜰에서 상을 차렸다. 달에 제사를 지내기 전에, 가족들은 먼저 잔치를 여는데, 주식은 동그란 형태의 전병이었다. 요리로는 모든 것이 가능했으며, 돈 있는 집안은 곧 산해진미가 준비되고, 궁한 백성들은 간소할 수 밖에 없었다. 식사가 끝나고 달이 올라오면, 달빛에 제사를 지낸다.


제사가 끝나면 종이가게(京纸铺)에서 주문한 달빛 말(月亮马儿)을 제삿상 위패에 올리고, 떡집(饽饽铺)에서 사온 커다란 월병을 놓는다. 월병에는 옥토끼 도안이 새겨져 있는데, 이를 단원병(团圆饼) 이라 부르며 , 그 무게는 30여 근에 이른다. 제사가 끝나면 월병을 가족들이 나누는데, 이때도 하인에게는 주지 않는다.


빈곤한 서민의 경우는 그저 약간의 월병을 만들거나, 그도 아니면 붉은 설탕소를 넣은 밀가루 떡을 만들어 붉은 색으로 그림을 그렸다.


일부의 경우 감과 사과를 대칭으로 올리는데, 이는 무사평안의 의미를 갖는다. 제삿상에는 향로, 촛대, 꽃병이 올려지며,제사용 은량(黄钱、元宝、千张)을 쌓아놓았다.


화병 하나에는 콩대를 꽂아두는데, 이는 옥토끼에 위한 제사이며, 또 다른 화병에는 맨드라미 꽃을 꽂아두며, 이는 달빛 속의 파사수를 상징한다.


달빛에 제사를 지낼때, 집안의 여주인이 제사를 주관하며, 옛 베이징 속담 중에 '남자는 달에 제사를 하지 못하고, 여자는 부뚜막신에 제사를 지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물론 후에 이러한 규정은 그렇게 엄격하지 않았다. 일단 여자가 먼저 제사를 지내고 남자가 제사를 지냈다. 이는 달빛이 음에 속하기 때문에 남자가 제사를 지내는 것은 좋지 않다는 인식이었다.


달 제사가 끝나면 달빛말을 태워버리는데, 흩어진 복을 모은다는 의미를 가진다. 달빛말은 크기와 색이 여러 종인데 모두 나무로 제작되어지며, 아래쪽에는 반드시 월궁의 계수나무와 약을 찧는 금토끼가 인쇄되어 있어야 한다.



* 달 감상하기

달빛 제사가 끝이나면 곧 달감상이다. 달감상 풍습은 위진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당나라시기에 이르러 이러한 풍습은 매우 성행하였다. 송나라때는 이날이 되면 모든 개봉의 요릿집에서는 모두 달구경하는 왕손 공자들이 모였다고 한다. 청나라 때에는 재월궁, 주월량의 풍습이 있었다.


달빛은 사람들에게 숭배의 대상이 되었는데, 이는 중국의 상아 분월(嫦娥奔月) 전설과 관련이 있다.


* 옥토끼 투얼예

후에 옥토끼는 베이징에서 아이들의 장난감이자 공예품인 투얼예(兔儿爷)로 변천되었다.

명나라 시게에 투얼예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명대기감 (明代纪坤)에는 "베이징 중추절에 점토로 토끼 인형을 만들고 의관은 마치 사람 형태이며, 제사를 지낸다" 라 기재되어 있다.  청나라기시기에 이르러, 투얼예를 판매하는 노점이 도처에 있었으며, 이를 사다가 아이들에게 주었고, 아이들도 어른들을 따라서 투얼예를 신주처럼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초기의 투얼예는 달빛마의 옥토끼를 모방한 것으로, 마치 약을 찧는 모양이었다. 광서년간에 태묘를 지키던 병사 중에 하나는 눌 씨고 다른 하나는 탑 씨였는데, 태묘의 점토를 이용하여 희곡속의 투얼예를 만들었는데, 큰 것은 3척이 넘었으며, 작은 것은 2-3촌이었다. 그리고 각종 모양, 사자, 호랑이 기린, 코끼리, 말, 사슴 등을 만들고 등에는 군기를 꽂았다, 현재의 투얼예 모양도 기본적으로 비슷하다.


* 월병

중추절의 주요 음식으로 월병이다. 월병은 궁병宫饼 , 단원병 团圆饼 , 월단 月团이라고도 부른다.

월병과 관련된 이야기는 적지 않다.

과거 베이징의 월병은 주로 베이징식(北京月饼), 광동식(广式月饼), 소주식 월병(苏式月饼)으로 나누어진다.

연경세시기(燕京岁时记) 기재에 보면, 월병은 전문 바깥의 지매재(致美斋)가 최고로 기록되어 있는데, 지매재는 산동식 요리점이며, 월병은 소주식 월병에 속한다.


광동식 월병은 청나라말기 민국초기에 광동사람으로 부터 시작되었으며, 노마시거리(骡马市大街)의 불조루(佛照楼)에서 광동식 간식가게(点心饽饽铺)를 개업했다. 하지만 광동음식이 베이징사람들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결국 광동식 월병집은 사라지고 소주식의 월병은 베이징에서 계속 이어졌다. 도향촌(稻香村) 역시 소주식 월병에 속한다.


* 창호지 붙이기

중주철 당일에는 창호지를 새로 하는 풍습이 있기도 했다. 이는 여름철 비바람에 낡은 창호지를 뜯고 새로 창호지를 붙여, 겨울을 준비하는 의미도 있다.


글 번역 / 나는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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