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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문화 중추선 9 : 사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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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단 (社稷坛拜殿)은 현재 베이징 중산공원 내에 위치한다.

명 영락 18년에 건설한 사직단은 명나라가 베이징에 도읍을 정한 후 처음 건설한 제단이다. 사직단의 글자 뜻은 사는(社) 토지신을 가리키며, 직(稷)은 오곡신을 가리킨다. 옛말에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긴다 (民以食为天)는 말이 있으며, 사직은 곧, 토지와 백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탓에 고대에 사직은 천하의 상징으로도 여겨졌으며, 역대 제왕들도 모두 사직을 중시하고 제사를 지냈다.

베이징의 사직단은 명청 양대 황제들이 태사와 태직에 제사를 지내던 신단으로, 역대 건조관념을 따르고 흡수하여, 국가, 천하, 백성에 대한 이해를 잘 표현하고 있으며, 제단 체계 중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명 성조 주체가 베이징으로 도읍을 옮긴 후에 좌조우사(左祖右社)의 체제에 따라, 사직단과 태묘를 건설하였다. 이때부터, 태묘는 조상 제사를 사직단은 토지신과 오곡신에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되었으며, 명청황제들의 공식 업무에 포함되었다.


매년 제사를 지내는 며칠간을 제외하고, 사직단의 대문은 잠겨있었으며, 출입을 엄걱히 금지하였다. 그후 민국3년에 이르러, 내무총장 주계령(朱启铃)이 사직단을 개방하도록 하였으며, 중앙공원으로 개조되었다.


1914년 10월 10일, 천안문 서측의 사직단은 인산인해로 매우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이날은 베이징에서 최초의 진정한 의미의 공원 중앙공원이 최초로 대외개방한 날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베일에 쌓여있던 황실원림의 모습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찿아온 것이다.

당시 중앙공원의 개방은 시민들로 부터 많은 호응과 환영을 받았다. 비록 당시에 공원 내에는 아무른 위락시설도 갖추지 않았지만, 황실 제사의 어도, 제기 등이 원래 모양을 갖추고 있었으며, 황실의 금지구역을 들어선 것만으로도 시민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켜주었다.


1925년 손중산 선생이 별세하고, 공원내 배전에 영구가 모셔졌으며, 1928년에 중앙공원은 중산공원 (中山公园)으로 개명했다.

중산공원 내 사직단 주요 건축군은 극문(戟门), 배전(拜殿), 사직단(社稷坛)으로 남북 중추선상에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북쪽 극문 남쪽이 배전이며, 제사 시에 우설에 예를 행사는 장소로, 현재는 손보산 기념전시실로 사용되고 있다.

배전 남쪽으로 사진단이 있으며, 제사의식을 행하는 핵심장소다. 제단은 고대 설법(东方苍龙、西方白虎、南方朱雀、北方玄武、中央黄)에 따라 오색토를 깔았다. 동쪽은 청색토, 서쪽은 백색토, 남쪽은 넉색토, 북쪽은 흑색토, 중앙은 황색토로 '하늘아래 황제의 땅이 아닌 곳이 없다(普天之下莫非王土)' 는  의미를 상징하고 있다.


사직단 제단 네면에는 방형 담장이 설치되어 있으며, 각 면은 그 방향의 흙색과 같은 유리벽돌과 기와로 사용되었다.


사직단은 천단, 태묘와 동급의 중요한 국가제사장소였으며, 그 정신은 농업에 대한 중시, 토지와 자연에 대한 경의를 표시하고 있으며, 또, 국가흥망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다.

주소 : 北京市西城区天安门西侧中山公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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