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설명: 아늑한 사합원 문밖)
수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보유하는 중국 수도 베이징(北京, Beijing)의 민가는 사합원(四合院)이라 하고 사합원 사이를 이리 저리 뻗어 있는 골목은 후퉁(胡同)이라 한다.
베이징에는 노오란 유리기와의 지붕을 떠이고 높고 붉은 성에 싸여 있는 황궁 자금성과 그 주변에 널려 있는 회색의 담과 회색의 벽돌로 지은 서민들의 민가 사합원이 뚜렷한 대비를 형성한다.
그리고 황궁밖에서 살아가는 왕공귀족들이 쓰고 살던 사합원 건물양식의 왕부(王府)도 60여채나 있는데 그 중 베이징과 중국, 나아가서 세계 최대의 사합원으로 인정되는 건물은 공왕부(恭王府)이다.

(사진설명: 웅장한 사합원 공왕부의 정문)
공왕부는 원래 청(淸) 건륭(乾隆)제때 황제의 총애를 받던 최고의 신하 대학사 화신(和紳)의 저택이었다. 그는 건륭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면서 악명도 쌓고 많은 돈을 긁어모아 으리으리한 저택을 지었다.
1799년 건륭제에 이어 등극한 가경(嘉慶)제가 20여 가지의 죄목으로 화신을 감방으로 보내고 화신의 저택을 자신의 동생인 희친(僖親)왕에게 선물했고 그 뒤 함풍(咸豊)제때는 공친왕에게로 돌아가 오늘에 이른다.

(사진설명: 석진재의 내부)
이 저택에는 화원 2개가 딸려 있는데 남북향으로 다섯줄의 건물이 겹겹하고 동서향으로는 세 개의 뜰이 순서대로 위치해 있다. 7개의 방이 나란히 하고 2층 높이를 가진 공왕부 최고급별의 건물 석진재(錫晉齋)에는 귀중한 서예작품도 소장되어 있다.
석진재는 귀중한 목재인 녹나무로 정교한 조각물을 만들었는데 바로 그 때문에 "녹나무로 집을 짓고 황궁의 녕수궁(寧壽宮)의 구도를 본땄다"는 내용이 화신의 20가지 죄목 중 하나이다.

(사진설명: 공왕부의 화원)
공왕부는 화원도 아주 운치 있게 꾸며져 있다. 회랑이 꼬불꼬불하고 주변에는 울퉁불퉁한 기암괴석들이 조화를 이루며 또 정자와 누각이 다정하고 푸른 물이 정적인 장면에 동적은 흐름을 만들어준다.
공왕부가 중국의 4대 고전소설 홍루몽(紅樓夢)에 묘사된 주인공 가보옥(賈寶玉)의 저택 영국부(榮國附)와 유사하다고 하는 점에서 영국부의 호화함과 사치함을 엿볼수 있다.
공왕부가 사합원이기는 하지만 서민들이 살아가는 사합원과는 차원이 다르다. 베이징인들의 어제를 보려면 일반 사합원과 그 사합원들을 연결하는 골목인 후퉁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진설명: 사합원의 구도 조감도)
사합원이란 명실공히 사면이 모두 막혀 있는 건물양식을 말한다. 건물과 담으로 정방형 혹은 장방형의 네모난 뜰을 형성하는데 남쪽 귀퉁이에 난 문을 통해 사합원에 들어서면 천기의 기운을 받아 아늑한 가운데 안방에 어른이 계시고 앞쪽에는 남자들, 후원에는 여자들이 살아가는 구도에서 인생의 즐거움이 역역하다.
오늘날 베이징에서 사합원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은 자금성의 북쪽에 위치한 십찰해(什刹海)와 후해(後海), 적수담(積水潭) 등 동네이다. 황궁인 자금성(紫禁城)을 제외하고 베이징에서 환경이 가장 좋은 이 곳은 예로부터 중산층이 살던 곳이었다.

(사진설명: 사합원과 골목)
오늘날 이 곳은 베이징에서 사합원이 가장 집중된 곳으로서 공왕부를 비롯해 많은 아름답고 운치 있는 사합원들이 멀지 않은 거리를 사이두고 다정하게 위치해 있다.
그 중 남북길이 1km의 후퉁인 남라고항(南锣鼓巷)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8갈래의 후퉁이 대칭을 이루는 곳에는 회색의 벽돌에 청색의 기와를 떠인 사합원들이 일색을 자랑한다.
자금성 동쪽의 동단(東單)에서 북신교(北新橋)까지는 과거 고위관리들이 살아가던 곳이라 이리 저리 뻗은 후퉁들이 엄밀한 구도를 자랑하고 후퉁 양쪽의 사합원들은 거대한 규모와 위용을 자랑한다.

(사진설명: 골목을 보는 교통수단 인력거)
오늘날 사합원들은 많이 파손되었지만 아직도 완정하게 남아 있는 사합원 입구의 돌 사자와 높직한 문둔테가 과거의 위용과 찬란함을 보여주고도 남음이 있다.
베이징의 후퉁과 사합원을 보는데 가장 좋은 교통수단은 자전거나 인력 삼륜차이다. 자전거를 타고 조용하고 아늑한 후퉁을 가다가 임의의 사합원의 두터운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제로 돌아간 듯한 또 다른 베이징의 생활을 볼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