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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스러운 옛 건물이 즐비한 선비 동네 베이징 링수이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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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발전과 함께 도농간 격차가 줄면서 넓은 중국땅 여기저기에 산재한 시골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려한 경치와 고풍스러운 옛 건물, 풍부한 민속풍토를 가진 숨은 백여개의 시골로 출발한다.

중국의 유명시골 중 일흔 세 번째는 베이징 근교의 선비 동네 영수(靈水, Lingshui)촌이다. 과거시험에 급제한 사람이 많고 최초의 대학교인 베이징 연경대학에 입학한 사람도 6명이나 되어 선비의 동네로 인정되는 영수촌에서는 얼룩진 바람벽과 반 남은 절의 담, 키 높은 고목에서도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던 영수촌 학도들의 모습이 보인다.

베이징(北京, Beijing)에서 서쪽으로 78km 떨어진 묘봉산(妙峰山)의 서남쪽 기슭에 위치한 영수촌은 이천여년전의 한(漢)나라때 조성되어 천여년전의 료(遼)나라때 동네의 규모가 형성되면서 지금까지 명청(明淸)시기의 건물을 많이 보존하고 있다.

마을에는 용왕묘와 문창각(文昌閣), 오도묘(五道廟), 천성성모묘(天仙聖母廟), 백의암(白衣庵), 괴성루(魁星樓), 승천암(勝泉庵), 영천선사(零泉禪寺) 등을 비롯해서 절도 많다.

이런 절이나 절터, 마을의 가옥들 사이에는 또한 키 높은 고목들이 줄지어서 유구한 역사를 보여주는 동시에 영수촌을 우아하고 질박하며 아늑한 동네로 만든다.

마을의 남쪽 산등성이에 올라 뭇산의 품속에 안겨 있는 영수촌을 내려다 보면 마치 커다란 거북이 누워있는 것 같다. 전설에 의하면 거북은 영을 가진 네 가지 동물 중 북쪽을 관리하며 길함과 장수를 대표한다고 한다.

 영수촌의 세 갈래 골목과 사면이 막힌 크고 작은 사합원식 건물들이 머리를 남쪽에 두고 꼬리를 북쪽에 둔 이 거북잔등에 바둑판 같은 무늬를 그린다.

사람들은 영수촌이라는 이름도 바로 이 영물인 거북이에게서 취했다고 한다. 과거 영수촌에는 72개의 우물이 있고 우물마다 맑고 단 샘물이 나서 영물의 영(靈)자의 샘물의 수(水)자를 합쳐서 동네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영수팔경은 오랜 세월동안 다양하게 발전변화를 거듭하다가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동쪽 산마루의 바위, 서산의 연꽃, 남당에서 바라본 북쪽의 산, 북산의 푸른 소나무, 느릅나무를 그러안은 측백나무, 샘물가의 은행, 선비의 뜰, 비 내리는 산장으로 꼽힌다.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과거시험에 합격된 영수촌에는 건물이나 마을 곳곳에서 선비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주인의 급별을 넘어서서 많은 방을 둔 대저택과 다섯겹의 뜰을 가진 저택, 상하좌우로 서로 연결된 저택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건물로는 거인택원(擧人宅院)을 들수 있다.

사면이 막힌 이 건물은 문앞의 조벽(照壁)과 후문뒤의 말고삐를 매는 나무기둥, 화려한 목각물을 자랑하는 창틀 등을 완정하게 보존하고 있다. 건물의 동쪽에는 후원으로 통하는 복도가 특이하다.

영수촌 중심선상에 서 있는 대문루(大門樓)는 목조건물을 본 딴 벽돌건물이다. 두터운 벽체상단에 역시 목조건물을 모방해서 벽돌로 처마와 지붕을 만들고 벽체에는 정교한 조각을 새겼다.

이 문루는 문짝만 나무로 하고 나머지는 모두 벽돌로 지었다. 전한데 의하면 이 건물은 영수촌에서 유일하게 900여년전 원(元)나라때 지은 것이라고 한다.

영수촌 서북쪽의 연화산(蓮花山)기슭에 한나라때의 영천선사가 있는데 오늘날은 산문만 남아 있다. 사서기록에 의하면 영천사는 인근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절이다.

오늘날 초등학교로 개조된 이 절의 산문에 들어서면 저 쪽 뜰에 키 높은 은행나무 두 그루가 보인다. 찬란한 햇빛아래 노오란 나뭇잎이 눈부신 이 은행이 바로 영수팔경의 하나인 샘물가의 은행이다.

이 두 그루의 은행은 모두 열매를 맺지 않는 수컷이었는데 과거 영수촌의 한 선인이 한 나무에 암컷 은행가지를 접목한후부터 수컷 은행나무가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고 한다.

영수촌 서쪽의 남해화(南海火)룡왕묘와 천선성모묘, 관음당(觀音堂), 이랑묘(二郞廟) 등 네개의 절은 가까이 밀착되어 있다. 네 건물중의 중앙에 위치한 남해화룡왕묘는 금(金)나라때 신축되었다가 1536년 명(明)나라때 재건된 건물이다.

오늘날 절의 대궐은 없어지고 청색의 벽돌을 쌓아 만든 산문만 남아 있다. 동물의 조각상과 벽돌로 만든 현판에 남해화룡왕묘라는 절의 이름이 적혀 있고 그 곁에는 1536년에 재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절의 뜰에는 천여년의 수령을 가진 고목 두 그루가 있는데 한 그루는 뽕나무 가지를 가진 측백나무이고 다른 한 그루는 느릅나무가지를 가진 측백나무이다.

한 나무에서 두 가지 나무의 줄기가 함께 하는 기이한 이 경관은 성수팔경의 하나이며 베이징의 고목 경관중에서도 손 꼽히는 기이한 경관으로 인정된다.

영수촌에서는 해마다 입추날이면 시험에 합격됨을 의미하는 금방절(金榜節)을 보낸다. 입추날이 되면 대학입시를 가까이 둔 학도들이 영수촌을 찾아와 거인죽(擧人粥)을 먹으면서 시험합격을 위한 선인들의 경험을 피부로 느낀다.

영수촌의 지방극목인 소방자(小梆子)도 특색이다. 가장 대표적인 극목이 아홉굽이를 도는 황하의 등불인데 해마다 등불을 돌리면서 이 극목을 공연한다. 그 때가 되면 인근동네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영수촌은 환락의 도가니에 빠진다.

영수촌에서는 호두와 살구씨, 대추 등 특산물이 많이 나며 버섯도 좋다. 영수촌에는 PC방과 제대로 된 슈퍼가 없고 일 일 50원(RMB)요금으로 하루 세 끼 식사를 제공하는 민박만 있을 뿐이다.

위치: 베이징(北京, Beijing) 문두구(門頭溝, Mentougou)구 재당(齋堂, Zhaitang)진.

고풍스러운 옛 건물이 즐비한 선비 동네 영수촌 과거시험에 급제한 사람이 많고 최초의 대학교인 베이징 연경대학에 입학한 사람도 6명이나 되어 선비의 동네로 인정되는 영수촌에서는 얼룩진 바람벽과 반 남은 절의 담, 키 높은 고목에서도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던 영수촌 학도들의 모습이 보인다.
 

 

 



베이징관광국 한글공식사이트     최종수정일: 2014-09-16 08: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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