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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전통명절 "단오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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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절은 음력으로 5월 5일인데 단양절(端陽節), 오일절(午日節), 오월절(五月節) 등 여러 가지 별칭이 있다. "단오절"은 또 중국의 법정휴가일 중의 하루이며 세계문화유산명록에 등재되었다.

단오절은 중국에서 기원했으며 처음에는 병을 퇴치하고 전염병을 예방하는 명절이었다. 옛날 오나라와 월나라는 봄과 가을이 오기 전인 음력 5월5일에 용선경기를 펼치는 형식으로 부락의 토템에 제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그 후에는 굴원(屈原)이 이 날에 세상을 하직함으로써 중국의 한족들이 굴원을 기리기 위한 전통명절로 되었다. 단오절에는 종자(粽子)를 먹고 웅황주(雄黃酒)를 마시며 쑥이나 쑥 잎, 삽주(일명 창출), 백지를 걸어놓으며 용선경기를 펼치는 풍습이 있다.

통계에 따르면 단오절의 이름과 관련해서는 약 20개 정도가 있다고 합니다. 예하면 단오절(端五節)을 망라해 단양절(端陽節), 중오절(重五節), 중오절(重午節), 천중절(天中節), 하절(夏节), 오월절(五月節), 창절(菖節), 포절(蒲節), 용주절(龍舟節), 욕난절(浴蘭節), 굴원일(屈原日) 등이다.

단오절의 기원:

단오절의 기원과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설법이 있는데 그중에서 굴월과 관련된 설법이 영향력이 가장 크다.

"사기" "굴원가생열전(屈原賈生列傳)에는 굴원은 춘추시기 초회왕(楚懷王)의 대신으로 있었다고 기재돼 있다. 굴원은 현자를 천거하고 능력 있는 자에게 관직을 주며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군대를 강성하게 하며 강력히 제나라와 연합하고 진나라에 저항하는 정책을 제창해 왔는데 귀족 자란(子蘭) 등 사람들의 강력한 반대를 받았다. 굴원은 모략을 받고 관직을 내려놓고 도성에서 쫓겨나 원(沅), 상(湘) 일대로 유배되었다. 유배기간 그는 나라와 백성의 운명을 걱정하는 "이소"(離騷), 천문(天問), 구가(九歌) 등 불후의 시를 써냈다. 그가 쓴 이런 시들은 풍격이 독특해 그 영향력이 아주 컸다. 때문에 단오절은 일명 시인절이라 부르기도 한다.

기원전 278년, 진(秦)나라는 초(楚)나라 수도를 공략했다. 자기의 조국이 침략을 받는 것을 본 굴원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고 조국이 침략을 당하는 것을 보고 참을수가 없었다. 하여 음력 5월5일에 인생의 마지막 작품 "회사"(懷沙)를 써놓고 돌을 안고 멱라강(汨羅江)에 투신해 생을 마감했다. 그는 자신의 생명에 장려한 애국주의 시편을 남겼다.

전설에 따르면 굴원이 돌아간 후 초나라의 백성들은 슬픔을 참을 수 없어 다투어 멱라강을 찾아 굴원을 추모했다고 한다. 어부들은 배를 타고 강을 오르내리며 그의 시신을 찾았다. 한 어부는 굴원을 위해 준비한 주먹밥과 계란 등 음식물을 강에 뿌리기도 했다. 바다에 살고 있는 물고기나 새우들이 배가 불러 굴원의 시신을 훼손하지 말도록 하려는 것이 였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다투어 모방하기도 했다. 한 의원은 한 단지의 웅황주를 들고 와 강물에 쏟기도 하였는데 이는 술이 바다동물들을 취하게 해 굴원의 시신을 뜯어먹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 후 사람들은 또 주먹밥을 이런 바다동물들이 다 먹어치울까 걱정되어 나무 잎으로 주먹밥을 사서 강물에 뿌렸는데 그것이 점차 발전해 오늘날의 종자(棕子)가 된것이다.

그 후 해마다 음력 5월 초 닷새면 용선경기도 펼치고 종자도 먹고 웅황주를 마시면서 애국 시인 굴원을 기렸다.

2006년 5월20일에 단오절 민속은 중국국무원의 비준을 거쳐 제1진 국가무형문화재 명록에 등재되었다. 2007년 12월7일에는 중국국무원 제 198차 상무회의에서 결의를 통과하고 정식 단오절을 나라의 법정휴일로 정했는데 규정에 의해 그 후로부터는 단오절에 하루 쉬고 있다.

2009년 9월30일 유네스코 무형문화재보호 정부 간 위원회 제4차 회의가 아랍추장국 아부자비에서 열렸는데 회의에서는 "인류무형문화유산대표작 명록" 76개를 심사 비준했다. 그중에는 중국의 "단오절"도 이름을 올렸다. 이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세계무형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린 명절이다.

단오절의 특색음식:

가장 먼저 나타난 단오절 음식은 서한 때의 효갱(枭羹)이다. 하지만 효갱을 먹는 풍습은 그렇게 유행하지 않았다. 그래도 단오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종자(粽子)로서 동한 때 벌써 나타났다. 그러다가 진(晉)나라 때에 와서야 종자(粽子)는 단오 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

단오음식 종자(粽子)

종자(粽子)는 일명 각서(角黍)라고도 하는데 전설에 의하면 강에 투신한 굴원을 기리기 위해 발명한 것이라고 한다. 진정으로 문자기재에 남아있는 종자(粽子)는 진주처(晉周處)의 "풍토기"(風土記)에 있고 규범적이고 역사가 오랜 종자(粽子)는 서안의 꿀(蜂蜜涼) 종자(粽子)로서 당위거원(唐韋巨源)의 "식보"(食譜)에 기재되었다.

"종자향이 온 주방에 가득하고, 쑥 잎 향기 뜰에 차고 넘치네. 복숭아나무가지 대문위에 꽃아 놓고, 밖에 나가 바라보니 온 들판은 누런 밀이 뒤덮혔네. 여기도 단양이요. 저기도 단양이라 가는 곳마다 단양이라네."

이는 옛날 널리 전해진 단오절을 묘사한 민요이다. 총적으로 각지의 단오절 풍습은 대동소이하지만 단오절에 종자(粽子)를 먹는 것 만 은 고금중외 중국의 어느 곳에서나 똑 같았다.

오늘날의 종자는 가지각색으로 그 종류가 아주 많다. 많은 곳의 종자는 대나무 잎으로 싼 찹쌀밥이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내용물은 각지의 특산과 풍속에 의해 결정된다. 유명한 것으로는 용안종자, 고기종자, 수정종자, 연밥종자, 꿀 종자, 밤 종자, 매운맛 종자, 신맛 종자, 소세지 종자, 절인오리알 종자 등 각양각색이다.

황주(雄黃酒):

단오절에는 웅황주를 마시는 풍속이 있는데 옛날 장강유역 지역에서 많이 성행했다. "웅황주를 마시면 병마를 쫓아낸다"는 고어도 있는데 웅황주는 살균, 살충, 독을 제거하는 효능이 있다고 하여 옛날 중의들은 웅황주를 피부병을 치료하는데 활용하기도 했다. 요드팅크와 같은 소독제가 없었던 과거에는 웅황을 담근 술을 마시는 것으로 독을 제거하고 가려움증을 없앴다고 한다. 아직 술을 마실 수 없는 어린이들에게는 어른들이 그들에게 이마나 귀, 코, 손바닥 등 여러 곳에 웅황주를 발라 소독하고 병을 예방했으며 모기에게 물리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단오절의 특색행사 용선경기:

용선경기는 단오절의 중요한 풍속이다. 전해진데 의하면 옛날 초나라 사람들은 현신 굴원이 강물에 투신해 생을 마감한 것이 너무나 아쉬워 배를 타고 그를 구하기에 나섰다. 그들은 뒤질세라 앞 다투어 동정호(洞庭湖)까지 쫓아갔는데도 굴원의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 후 해마다 음력 5월 초 닷새 날에 용선을 타는 것으로 그를 기리고 있다. 또 용선을 타는 것으로 강물속의 물고기들이 놀라 굴원의 시신을 먹어치우는 것을 방지하려는 뜻도 들어 있다고 한다. 용선경기를 벌이는 풍속은 오나라와 월나라, 초나라, 초나라에서 크게 유행했다.

사실 "용선경기"는 일찍 전국시기에 벌써 있었다고 한다. 다급한 북소리가 울리면서 용의 모양으로 깎아 만든 통나무배(독목주獨木舟)로 경기를 펼치는데 제사의식 중의 반종교성(半宗教性)과 반오락성(半娛樂性) 을 띤 프로그램이다.

그 후 용선경기는 굴원을 기리는 뜻을 제외하고도 일부 지역에서는 또 다른 의미도 부여했다.

귀주성에 살고 있는 묘족인들은 음력으로 5월25일부터 28일까지 기간 "용선절"을 맞이하고 있는데 벼 모 내기의 성공과 오곡풍년을 기원하는 뜻에서라고 한다. 운남의 따이족인들은 살수절에 용선경기를 펼쳐 고대영웅 암홍와(岩紅窩)를 기린다. 이처럼 민족이 다르고 지역이 다름에 따라 용선경기에 대한 전설 또한 각이하다. 지금까지도 강이나 호수를 끼고 있는 남방의 많은 지역들에서는 해마다 단오절이 되면 자신들만의 특색이 다분한 용선경기를 벌인다.

청나라 건륭황제 29년(1736년)에 대만에서도 용선경기를 펼쳤다. 당시 대만의 지부(知府) 장원군(蔣元君)은 대남시 법화사(法華寺)의 반월지(半月池)에서 친선경기를 조직했다. 지금도 대만에서는 해마다 음력 5월5일이면 어김없이 용선경기를 진행하고 있으며 홍콩에서도 용선경기를 마련하고 있다.

그 외에도 용선경기는 선후로 인국인 일본이나 베트남, 영국에 까지 전해졌다. 1980년에 용선경기는 중국국가스포츠경기항목에 들었으며 해마다 "굴원컵" 용선경기를 펼친다. 1991년 6월16일 (음력 5월 초 닷새)에는 굴원의 제2고향인 중국 호남성 악양시에서 첫 국제용선경기를 진행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먼저 전통적인 의식을 보존하면서도 새로운 현대적인 요인이 가미된 "용두제"(龍頭祭)를 지낸다. "용두"를 들어 굴원의 사당으로 모시는데 선수가 용두에 붉은 색 띠를 올려놓는다. 다음 제사를 주재하는 사람이 제문을 낭독하고 용두를 위해 개안 (즉 점청點晴)을 한다. 다음 용 제사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들이 세 번 국궁(三鞠躬)을 한다. 그 후 용두는 멱라강 용선경기 현장으로 호송된다. 그때 경기에 참가하고 교역회와 연환모임에 참여한 사람은 무려 60만 명에 달해 성황을 이루었다. 그 후부터 호남에서는 정기적으로 국제용선경기가 개최되고 있다.

일본에서의 단오절:

일본은 자고로 중국의 전통명절을 쇠고 있다. 일본에서 단오절 풍속은 평안시대이후 중국으로부터 전해졌는데 메이지 시대 때부터 모든 명절은 양력으로 고쳐졌다. 일본의 단오절은 양력 5월5일이다. 단오절 퐁속이 일본에 전해진 후 현지에 맞게 흡수, 고쳐져 일본의 전통문화로 정착했다.

일본어에서 "창포"(菖蒲)와 "상무"(尚武)의 발음이 같다. 때문에 남자애들의 명절로 불려지기도 한다. 남자애들이 있는 집에서는 리어번(鯉魚幡)을 걸어놓기도 한다. 일본인들은 이날에 용선경기는 하지 않지만 중국인들처럼 종자는 먹는다. 또 문앞에 창포초를 걸어놓기도 한다. 1948년, 일본정부는 단오절을 법정아동절로 정한다고 발표하면서 일본의 5대명절중의 하나로 되었다.

한국에서의 단오절:

한국에서는 이날 산신령에게 제를 지내며 창포물로 머리를 감고 차륜병을 먹는다. 이밖에 양반과 소매 각시, 장자머리, 시시딱딱이가 가면을 쓰고 말없이 관노가면극놀이를 하거나, 그네타기, 씨름, 농악경연대회 등 다양한 행사가 개최된다. 단오 다음날에는 신성시하는 나무를 태우고 서낭신을 대관령으로 모시면서 단오제는 막을 내린다. 강릉단오제는 제관에 의해 이루어지는 유교식 의례와 무당들의 굿이 함께 거행되는 동해안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마을축제로 수많은 군중들이 모여들고 난장이 크게 벌어진다. 특히 관노가면극은 한국에서 유일한 무언극으로 대사 없이 몸짓으로 관객을 웃기고 즐겁게 한다. 강릉단오제는 민간신앙 이 결합된 한국 고유의 향토축제이며, 지역주민이 화합하고 단결하는 협동정신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단오절 행사에는 용선경기가 없고 음식에도 종자는 없다.



베이징관광국 한글공식사이트     최종수정일: 2014-06-04 09: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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