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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의 정원 2. 원명원 - 폐허가 된 중국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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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가 된 중국의 자존심 - 원명원
 과거 영화 간직한 대륙의 상징

 이화원이 중국의 화려함과 웅장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중국의 정원이라면 그러한 중국의 거대한 힘이 서양세력에 의해 파괴되고 짓밟혔던 역사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은 바로 원명원이다.

원명원은 1709년 강희재 때 건축되기 시작돼 건륭제까지 6대 150년에 걸쳐 건축한 중국의 대표적인 황가원림으로써 ‘정원 중의 정원(万園之園)’이라 불리던 청대 황실의 정원이다. 청대에 조정관서가 설치됐고 수많은 황제들이 1년의 절반 이상씩 머물며 조정업무를 보던 실질적인 제2의 황궁이었다. 320ha의 넓이에 크고 작은 수많은 인공호수를 파고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진 무릉도원을 연상케 하는 곳인 원명원에는 중국 전통건물들과 함께 로코코 양식의 영향을 받은 유럽식 건축물인 서양루(西洋樓)를 지어 놓아 동양과 서양의 신화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화합의 공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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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흥망성쇠 함께 한 원명원
 세계를 호령하던 중국의 화려함이 묻어나던 원명원이화원과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대표적인 원림으로 중국의 수많은 역사의 사건들과 함께 한 공간이었다. 역사 속 화려했던 시간이 지나고 서양세력이 중국을 농락하며 대륙의 자존심을 짓밟았을 때 원명원은 1860년 제2차 아편전쟁에서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에 의해 이화원과 함께 폐허로 변했다. 서태후의 사치스러움으로 인해 군비까지 빼돌려져 복구된 이화원은 다행히도 그 화려함을 되찾았지만 원명원은 그렇지 못했고 ‘아픈 역사를 잊을 수 없다’는 중국인들의 각오와 함께 지금까지 예전의 모습을 되찾지 못한 채 폐허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예전의 화려함에 녹아 있는 중국 원림의 법칙 
 원명은 고궁(자금성)의 다섯 배의 넓이를 자랑한다. 290ha인 이화원보다 30ha 이상이 큰 중국의 최대 정원이기도 하다. 황제의 ‘강남의 빼어난 경관을 옮겨올 수 있다는 믿음’은 분지지형인 베이징 고궁 서북부의 넓은 땅에 원명원을 건축하게 했다. 절반 이상의 넓이를 크고 작은 인공호수들로 만들었으며 1000여 개의 궁전과 100여 개의 원림경관, 600여 개의 크고 작은 축구장을 갖춘 거대한 역사를 만들었다. 150년의 세월이 필요했던 이유이기도 한 그 화려함은 청대 황제들을 고궁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했고 기록에 의하면 겨울에만 고궁(자금성)에 들어가 1개월여 동안 머물렀을 뿐 제의와 경전, 국사집행 등 대부분의 의식이 원명원에서 행해졌으며 청대의 가장 흥하던 시기의 역사가 바로 이곳에서 써내려가 졌다.

각각의 원명원 속에는 신화와 전설, 동양의 사상이 내포돼 있다. 동해의 용궁을 옮겨왔다는 ‘방호승경‘이 건축됐고 호수 주변에 9개의 섬을 조성하고 구주(九州), 청연(淸宴)을 비롯한 9동의 부속건물을 지었다. 푸하이(福海)에는 신선이 살고 있다는 세 섬 봉래, 방장, 영주를 뜻하는 작은 섬 3개를 조성해 항상 황제가 거하는 정원을 신선이 살고 있는 곳과 동일하게 건축하려 했다. 이러한 특징은 이화원에도 드러나 중국 원림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인공호수를 파면서 나온 흙들은 주변에 낮은 구릉들을 만들었고, 이러한 구릉들은 시야를 적절히 가림으로써 이동에 따라 다른 경관을 보이게 해 지루함을 없애며 진정한 아름다움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는 중국의 원림법칙을 적용시켰다. 지금은 비록 폐허가 돼 있는 곳이지만 황제가 다니던 길을 따라 거닐다 보면 수없이 펼쳐지는 크고 작은 선경에 인간이 만들었다고는 절대 생각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놀라움이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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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로 되살아난 원명원
 청대 황실의 주 무대였고, 살아있는 역사의 산실이었던 원명원은 다큐멘터리로 중국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원명원의 창건부터 폐허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역사를 그린 ‘원명원’은 그 속에서 펼쳐진 청 왕조의 생활상과 황제들의 정치이념, 청 왕조의 몰락 배경을 현대의 기술로 되살려냈다.

황제들의 생활모습과 역사적인 사건을 재연한 드라마적인 요소를 가미해 기존 다큐멘터리를 넘어서려 했던 노력과 철저한 고증과 뛰어난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원명원의 웅장한 모습은 되살아났다. 황실미술관인 ‘여의관’과 강남을 옮겨온 듯 한 수많은 화원, 베르사이유궁의 화려함을 갖춘 서양루의 장관과 그 속에서의 청 황제들의 삶과 역사가 펼쳐졌고, 서양의 침탈에 의해 그 화려함이 폐허가 되기까지의 모습을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서적과 그림들을 토대로 되살려 냈다. 3D 기술과 특수효과로 되살아난 원명원은 그 웅장하고 거대한 모습을 재현해 내 중국인들 스스로에게 그것을 보여줬고, 현재의 폐허의 모습과 대비해 중국을 침탈해 온 프랑스와 영국의 야만적인 파괴행위를 역설했다.

원명원’의 1년 이상 되는 준비기간과 4년에 걸친 촬영기간, 1천만 위엔(약 13억)이 투자된 중국 다큐멘터리로써 불록버스터 급이었던 투자는 중국 전역의 극장개봉을 통해 1천만 위엔 이라는 기대 이상의 극장수익을 거두게 했다. ‘원명원’은 주요 서술자를 중국 황실에 있던 프랑스 화가와 영국 선교사로 삼아 가해자 스스로 자신의 행위를 비난하게 하는 듯한 플롯을 사용했다. 이는 중국인 스스로의 자존심을 치켜 세워주며 위로해줘 옛날의 화려함과 자긍심을 되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충족시켜 흥행으로 이어지는 원동력이 됐다. 다큐멘터리 ‘원명원’으로 중국은 ‘폐허가 된 중국 자존심의 상징인 원명원’의 화려한 모습을 화면으로나마 부활시킴으로써 자긍심을 되찾았고 현재 폐허의 모습을 그들의 야만에 책임 지움으로써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었다.

원명원 복구를 둘러 싼 논쟁
 이화원의 복구는 그들에게 옛날의 화려함을 되살릴 수 있게 했지만, 그 복구비용으로 인해 청왕조는 망하게 되고 중국 전 대륙이 혼란기를 거치게 했다. 중국의 건국 초기 원명원의 복구는 그에 따르는 엄청난 비용때문에 반대됐던 것이 현실적인 이유였다. 그러나 원명원의 복구논란은 현재 다른 이유들로 수십 년간 계속되고 있다.

2005년 말라버린 호수에 물을 다시 대는 복구공사가 완성되면서 중국사회에 원명원 복구논란은 거세졌었다. 논란의 핵심은 ‘아픈 역사를 잊지 않게 하는 역사교육장소로써 원명원의 폐허는 복구돼선 안 된다’와 ‘예전의 화려한 모습을 복구해 중국문화의 웅장함을 전 세계에 보여줘야 한다’는 두 가지 논리이다. 어느 하나 틀린 논리가 없고 복원비용도 천문학적이어서 시작을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유적을 오락장소로 만든다는 비판에도 호수와 주변 전통건물 일부만을 복구한 채 폐허의 모습 그대로를 공원으로 이용하고 있다. 그 복원에는 전통적인 것은 살려도 서양 것은 복원할 수 없다는 중국의 자존심과 영국과 프랑스가 약탈해 간 문화재의 반환 없이 이뤄지는 복원은 반쪽짜리일 뿐이라는 생각이 일면 담겨 있다.

사람들은 화려했던 서양루의 건물들 잔해 위에서 사진을 찍으며 여가를 즐기고 화려했던 옛날을 상상하며 더 화려할 중국의 미래를 바라보기도 한다. 90년대까지도 베이징대학의 신입생환영회를 원명원에서 하며 아픈 역사를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던 원명원의 폐허는 복원의 정도에 따라서도 수많은 논란이 있기에 중국에서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를 피해 중국 영화제작사인 헝뎬그룹은 중국판 할리우드인 저장성 헝뎬시에 원명원의 황실정원을 복구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그 의미에 대해서도 논란이 만만치 않다.

대륙은 되살아나고 있다
 중국 대륙의 정신은 베르사이유 궁전을 본떠 만든 화려한 분수와 로마식 기둥, 바로크식 아치가 어우러진 서양루를 궁전의 하나로써 이용할 만큼 서양의 신화와 문화까지 아우르는 포용력과 자신감이 있었고 원명원은 그러한 대륙의 거대함의 상징이었다. 역사의 흥망성쇠의 주 무대였던 만큼 원명원은 영국과 프랑스의 침략으로 3일 밤낮을 타고 남은 폐허밖에 남지 않았지만 중국인들은 그것 그대로를 보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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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수많은 잔해들 속에서 화려했던 과거를 간직한 쓸쓸함이 풍겨져 나오는 원명원은 그 모습 그대로도 사랑을 받으며 지금까지 수십 년간의 복구 논쟁 속 한복판에 있어 왔다. 무엇을 얼마만큼 복원할지 지금도 계속되는 논쟁 속에서 과거의 잘못을 잊지 않고 극복하려는 그들의 무서움을 볼 수 있고, 지금 그러한 무서움이 그 이름 그대로 세계의 중심이 돼 가고 있다. 올림픽을 통해 한국이 최고의 경제부흥기를 이뤘던 그 길을 내년에 중국은 겪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간 수많은 고유의 문화를 잃은 채 서양과 동화된 우리나라와 달리 자신들의 문화를 사랑하고 그것을 꾸준히 지켜내려는 중화문화의 무서움과 거대함은 분명 우리와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야 말 것이다. 원명원의 폐허 속에서 그것을 사랑하는 중국인들을 바라보며 느낄 수 있었던 ‘자신의 문화에 긍지를 갖고 지켜나가는 대륙의 힘’이 우리 코앞에 닥쳐왔다.

 <환경일보 심은용 기자>

본 기사는 환경일보에서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의 정원에 대한 3편의 기획기사중 하나입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환경일보와 기자에게 있습니다



베이징관광국 한글공식사이트     최종수정일: 2015-05-06 11:5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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