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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절의 유래와 전설

  • 입력 2010-05-14 00:22:56 | 조회 4398 | 추천 256
  • 출처 BJT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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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절은 중국의 오래된 전통 명절이다. 중국 춘추전국(春秋战国)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지금까지 2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단오절의 유래는 여러 개인데 아래 몇가지가 일반적이다.

1. 굴원 (취위안, 屈原) 을 기념하는 날

《사기》 “굴원가생열전”(《史记》“屈原贾生列传”)의 기록을 보면 굴원은 춘추시대 초회왕(春秋时期楚怀王)의 충신이었다.  굴원은 능력있는 인재등용과 부국강병을 주창하며 치나라(齐国)와 연합하여 진나라(秦国)에 대항하자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귀족 자란(子兰) 등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왔다.

결국 모함에 의해 초회왕은 굴원을 면직시키고 지금의 후난성 지역(湘流域)으로 유배를 시켰다.  유배기간 굴원은 나라와 백성에 대한 근심으로 《离骚》、《天问》、《九歌》등 불후의 시들을 남겼는데, 독특한 그의 시풍은  후세에 깊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단오절을 시인절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원전 278년, 진나라는 초나라의 수도까지 침략했다. 굴원은 조국이 침략당한 걸 보고만 있으니 심장을 칼로 베는 듯 고통스러웠다. 시종 자신의 조국을 잊지 못한 굴원은  5월5일 그의 절필작 <회사>《怀沙》의 작업을 모두 마친 후, 돌을 안고 멱라강에 몸을 던졌다.  자신의 생명으로 한편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서사시를 쓴 셈이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굴원이 죽은 후 초나라 백성들은 너무 애통하여 멱라강에서 굴원을 추모했으며, 어부들은 그의 시신을 찾아 건져내기 위해 배를 띄웠다 한다. 어떤 어부들은 굴원의 시신을 보존키 위해 쌀밥과 계란 등의 음식을  준비해 강에 던졌는 데, 이는 물고기들이 그 음식을 먹고 배부르게 하여 굴원의 시체를 먹지 못하게 함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걸 보고 따라 하기 시작했다. 

또 한 노의사는 웅황주(雄黄酒 )를 강물에 뿌리면, 물속 괴물인 교룡(蛟龙)이 술에 취해 시신을 해칠 수 없다고 했다. 나중에 사람들은 쌀밥을 교룡이 먹을 까 두려워, 쌀밥을 멀구슬나무(楝树) 잎에 싸고, 색깔있는 끈으로 밖을 묶었는데, 이것이 종자(棕子,쭝즈 )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후 매년 5월5일에 용배경기(龙舟竞渡), 종자(粽子)먹기, 웅황주(雄黄酒) 먹기 등의 풍습이 생겼으며, 애국시인 굴원을 기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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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오자서(우쯔쉬,伍子胥)를  기념하는 날

단오절에 관한 두번째 전설은 춘추시대 (기원전 770- 기원전476년)의 오자서를 기념하는 날로 강소성,절강성지역(江浙一带 )에서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오자서는 이름은 원이고 추나라 사람으로 아버지와 형이 모두 초나라 왕에 의해 죽었다. 분개한 오자서는 그 후 오나라로 건너가 초나라 정벌을 도왔다.
다섯 번의 전쟁 끝에 초나라의 수도 영성을 공격해 들어갔으나 그때는 이미 초나라 평왕은 죽은 후였다. 오자서는 평왕의 무덤을 파서 시체에 300번의 채찍질을 해 죽은 자신의 아버지와 형에 대한 원한을 풀었다.

오나라왕 허루 阖庐 가 죽고 아들 푸차 夫差 가 왕위를 계승하고 나서 오나라 군대의 사기는 높았으며, 백전백승을 했다
 월나라(越国)를 대패시키자 월나라왕이 평화협정을 부탁했고, 푸차왕이 그에 동의를 했다. 오자서는 이를 보고 월나라를 완전히 소멸하자고 건의했으나 왕은 그의 말을 거절했다. 월나라의 뇌물을 받은 오나라의 재상의 모함에 왕은 오자서에게 보검과 함께 자결을 명했다.

본래 충신이었던 오자서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그가 죽기전에 이웃사람에게 부탁하길  “내 눈으로 월나라 군대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볼수 있도록, 내가 죽은 후에 내 눈을 파서 오나라 수도성 동문에 걸어주시오.” 라 하였다. 오자서가 자결한 후 이 소식을 들은 푸차왕이 크게 화가나 시체를 가죽에 싸매어 큰 강에 던지라 명했다. 이 같은 전설에 따라 단오절은 오자서를 기념하는 날이 되었다 한다.

 

3.효녀 조아(차오에, 曹娥)를 기념하는 날

단오절의 세번째 유래설은 동한(AD 23-220년)시기 효녀 조아(曹娥, 차오에)를 기념하는 날로, 그녀의 아버지가 강물에 투신하는 것을 막았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조아는 동한상위(东汉上虞) 사람으로, 아버지가 강물에 빠졌는데 며칠이나 그의 시체조차 찾을 수 없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14살로, 강기슭에서 밤낮없이 소리내어 울었다.
그렇게 17일이 지난 5월 5일, 그날도 역시 아버지를 찾기 위해 강물에 뛰어들었고 5일 후에 조아는 아버지의 시체를 안고 나왔다.

이 이야기는 신화처럼 전해져 지방관리인 현부지사(县府知事)가 알게 되, 도상(度尚)에게 비석을 세우고 그의 제자 한단순(邯郸淳)에게 추도문을 만들라 시켰다.

 효녀 조아의 묘는 지금 절강성 소흥(浙江绍兴)에 있는데, 후에 진왕의(晋王义) 가 조아의 비문을 적었다고 전해진다.
후세의 사람들이 조아의 효심을 기념하기 위해 그녀가 강물에 빠진 곳에 사원(曹娥庙)을 만들었으며, 그녀가 살았던 마을은 그녀의 이름을 따서 조아진(曹娥镇 )이라 개명하였고, 강의 이름은 조아강(曹娥江)으로 불렀다.

(번역 및 편집: 빙빙)



베이징관광국 한글공식사이트     최종수정일: 2010-05-14 00: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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