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 궁궐 역사_명 황제 3 영락제

2020-02-18

영락황제 永乐皇帝 (1403—1424年)

명 성조 영락황제 (明成祖永乐皇帝)의 이름은 주체 (朱棣),  원 지정 20년(1360年) 4월 17일 출생, 명 태조의 4째 아들이다.

명 홍무 3년 (1370年) 4월에 연왕(燕王)으로 봉해졌다. 홍무 30년 (1380年) 3월에 북평으로 갔는데, 이때가  21세 나이다. 

역사 기재에 따르면 주체는 지혜롭고 용맹하며 계략을 갖추었으며, 여러차례 출정을 나서 전적을 올려, 명성을 얻었다.

 

 홍무 31년 (1398年), 명 태조가 병사하고, 태자 주표(朱标)도 먼저 죽어, 22세의 황태손이 황위를 계승했으며, 이가 건문제다.

황태손 주윤문(朱允炆) 이 정치 경험이 부족한 등의 원인으로, 즉위 후 얼마 안 가  신하 (齐泰、黄子澄 ) 들의 모책에 따라 제왕들에 대한 삭번(削藩) 정책을 진행하여, 1년도 안되는 기간 내에 5명의 번왕을 취소하였다.

  이에 주체를 비롯한 번왕들이 위기감을 느꼈으며, 주체는 1399년에 정난의 변(靖难之役) 을 일으켰으며, 건문4년 (1402)에, 연나라 주체의 군사가 황도 남경에 진입하고 황위에 올랐다. 

주체는 바로 건문4년을 홍무 35년으로 바꾸고 그 다음 해부터 영락원년으로 바꾸었으며, 건문제 시절의 모든 궁전 명칭과 규정 등을 홍무년간 규정으로 바꾸었다. 또, 북평을 북경으로 개명하고, 다음해에는 연왕 제자 주고열 (朱高炽)을 황태자로 책봉했다. 

 주체는 즉위 후에, 주변국가와 우호관계에 주의하고, 무역을 발전시켰다. 문화 방면에서, 주체는 매우 많은 유익한 일을 처치했다. 그중에서 가장 큰 공적은 영락원년부터 시작하여 3천여 문인들을 조직해 《永乐大典 영락대전》을 편찬했는데, 이는 중국 역사상 최초의 백과 사전으로 평가받는다. 

 영락 년간의 또 다른 위대한 건설은 베이징 궁전이다. 

영락4년 (1406년)에 주체는 북부 변견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베이징 궁전 건축을 결정했으며, 영락 15년(1417)부터 대규모 건설을 하여, 영락18년(1420) 12월 말에 완공하였다. 그 다음해 부터 수도를 남경에서 부터 베이징으로 정식 이전하였다.  

주체의 베이징 궁전 건설과 천도의 주 목적은 북방 변경을 안정시키기 위함이었다. 천도 후, 주체는 즉시 북벌을 준비하고, 다음해 3월에 친히 출정을 하였다. 베이징 천도부터 주체가 죽기 전까지 55개월의 기간 동안, 주체는 3차례 친정하였으며, 24개월의 기간을 군사이동으로 보냈다. 

 영락 22년 (1424년) 7월에 죽었으며, 베이징 창평 장릉 (长陵)에 묻였다. 묘호는 태종(太宗)이었으나 가정 17년(1538年)에 성조(成祖)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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